26일 축구대표팀과 대구 FC의 연습경기가 열리기 전 파주 트레이닝센터 1층 로비.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과 이영진 대구 FC 감독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찻잔을 기울였다. 조 감독과 이 감독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안양 LG와 FC서울에서 사령탑과 코치로 팀을 이끌었다. 축구대표팀에 관한 얘기가 오가던 중 이 감독이 화제를 돌렸다. "오늘 (정)해성이 형 온다고 하던데. 지동원 뛰면 다치지 않게 살살해달라고 부탁하던데요" 조 감독이 농담으로 받아쳤다. "몬(못) 들어오게 해야겠네. 태클해뿌라(태클해 버려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마침 정해성 전남 감독이 NFC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감독이 먼저 인사하며 "경비 아저씨가 막았어야했는데, 이렇게 막 들어와도 되요"라며 인사했다. 이 감독과 정 감독은 현역시절 86년부터 89년까지 안양 LG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절친한 사이. 정 감독은 "조 감독님께 동원이 잘 지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려고 왔지 뭐"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때부터 세 사령탑의 공통화제는 지동원이었다.
이 감독은 다음달 2일 전남전을 앞두고 지동원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동원이 태클 좀 하려고 해도 대표팀 전력 약해질 걱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며 엄살을 피웠다. 정 감독은 "인천-대구전(1-1무)을 보니 대구 수비가 만만치 않더라. 대비하려고 왔다"고 답했다.
말을 이어 받은 조 감독은 이 감독에게 "대구전 연습경기에 후반 투입할 테니 태클해 버려라. 우린 다른 선수 뽑으면 된다"면서도 지동원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온두라스전을 다시 보니 동원이 움직임이 좋더라. 확실히 움직일 줄 아는 선수다"고 치켜세웠다. 지동원은 25일 온두라스전에 후반 30분 교체 투입돼 박주영의 헤딩골을 돕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동원은 이번 소집 훈련기간 조 감독의 특별관리 대상이었다. 소집 이튿날인 23일 오전에는 따로 불러내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지시했다. 떨어진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서다. 지동원은 지난달 히로시마와 연습경기 도중 무릎을 다친 뒤 20일 서울전 (3-0·전남 승)에 선발출전하기 전까지 한 달 정도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다. 조 감독은 지동원의 몸 상태를 고려해 온두라스전 출전 시간을 15분 정도로 제한했다. 26일에도 세심한 배려가 이어졌다. 최효진·윤빛가람 등 온두라스전에 후반 교체 투입된 선수들 대부분이 대구와 연습경기에 선발 출전한 것과 달리 지동원은 가마 코치와 따로 1시간 가량 체력훈련을 소화했다. 조 감독은 "대표팀에서 훈련 덜 시켜서 소속팀 돌아가 빌빌대면 나만 욕할 것 아닌가. 정 감독은 과외비 내놔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흐뭇한 표정으로 답했다.
지동원은 훈련이 끝난 뒤 "훈련 강도가 너무 높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면서도 "훈련을 하고 나니 숨이 좀 터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파주=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