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공부를 징그럽게 싫어한 내가 성적표를 들고 집에 오면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있다. “너 공부 안하면 아빠처럼 된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너 아빠가 왜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는 줄 아니? 다 너 하나 잘 되는 거 보려고 그래.”
목욕탕을 하기 전 우리 집은 중국요리 식당을 했고, 아닌 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는 정말 힘들게 일하셨다. 우리 집은 작은 식당이 아닌, 방이 열 몇 개가 넘고 홀에도 테이블이 무진장 많은 식당이었다. 돌 공장이 많은 보령의 웅천이란 동네에서 어지간한 공장은 우리집 밥을 시켜 먹었다. 주문 양이 너무 많아서 경운기로 실어 날랐다. '공부 못하면 울 아버지처럼 되는구나'를 수 없이 되뇌이며 난 상경했다.
우와 진짜! 서울에 오니 친구들 아버지는 대학을 나오거나 명문 덕수상고 같은 곳을 나온 분들이 많았다. 아침에 멋지게 셔츠에 양복 입고 출근하는 모습들이 참 멋져 보였다. 공부 잘 하니까 저런 옷을 입는구나. 난 이상하게 친구들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애들도 '짜장면 시키자'고 안하고 '짱깨 시키자'고 하니까 더 이상했고, 시골에서 안 쓰던 '철가방' 같은 말들을 하니까 더 창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 직업당 어느 정도의 수입을 버는가에 대해 알고 나니 참 웃겼다. 하얀 셔츠 입고 출근하는 친구 아버지의 한 달 수입이 우리 집 하루 이틀 매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용돈도 내가 훨씬 많이 쓰고 다녔다. 근데 아버지 직업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혹시 엄마도 아버지도 나 잘되라고 했던 말이 내게 ‘아버지는 부끄러운 직업을 가졌어’를 갖게 한 것은 아닐까?
어릴 때 자주 듣는 말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공부 안 할 거면 공장이나 들어가 이 새끼야!’가 있다. 이게 이공계 기피 현상이나 인문계 쏠림을 갖고 온 것은 아닐까? 상업고등학교 나온 것을 부끄럽게 인식하게 한 것은 아닐까? 뭔가 제도 개선을 하지 않고 명칭 먼저 바꾸기로 상고를 '컴퓨터고' '정보고' '디지털고' 등으로 불러 더욱 어정쩡하게 한 것은 아닐까?
요즘 인정받는 최고의 맛 집들을 보자. 일단 입구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3대째 이어온 맛’ 이다.
집안 대대로 이어온 비법을 가진 집이 최고로 인정받는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일본의 우동집 아들이 도쿄의 대학을 나와 아버지가 하던 우동집을 이어 받았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면서 나온 거다. 우리 같으면 ‘저 집 아들내미가 서울대 나와서 취직 못하고 지 애비 하던 국수면 뺀댜~ㅉㅉ’로 소문난다.
일단 ‘공부 안하면 니 애비처럼 된다’를 듣고 자란 사람이라도 결국 크면 다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던 엄마들도 내 자식은 힘든 육체노동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신 말씀이다. 중요한 것은 일을 하는 부모가 그것을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하는가에 대한 자세다. 자식은 그 모습을 후일 자랑스러워 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내 딸 보령이는 요리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한다. 물론 난 찬성이다. 뭘 하거나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바란다. 울 엄마가 그토록 내게 피하라고 했던 요리사를 결국 내 딸이 다시 하고 싶어 한다. 엄마가 또 그러실까? “보령아 너 공부 안하면 니 할아버지처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