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카데미시상식이었죠. 전통과 권위에 걸맞게 내로라하는 스타배우들과 감독들이 객석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얼굴이 눈에 띄더군요. 어느덧 하얗게 눈이 내린 은발에 적당히 주름진 얼굴이 친근하고 카리스마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회자가 촬영상 시상자를 소개하기 전에 객석의 스필버그 감독에게 다가가 콩트를 한 겁니다. 스필버그 감독에게 손 안에 쏙 들어갈만한 '똑딱이' 디카를 주고는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아주 작은 디카를 손에 쥐고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 우스우면서도 신선했습니다. 수백, 수천억원의 블록버스터를 거대한 카메라로 찍어온 명장이 몇 만원쯤 되어 보이는 디카를 든 모습은 즐거운 반전이었습니다.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낸 곽경택 감독도 스필버그 감독 만큼이나 재미있는 도전에 나섰습니다. 30일 개봉하는 신작 '미운 오리 새끼'를 통해 관객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제목에서부터 곽경택 감독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감을 줍니다. 곽감독이 그동안 만들어온 영화 다 아실 겁니다. '친구'(01) '태풍'(05) '사랑'(07) '통증'(11) 등… 관객수로 치면 적어도 수백만명의 흥행을 기록했고 배우로 치면 장동건·이정재·권상우·주진모 같은 톱스타들이 출연했습니다. 왠지 그는 규모가 있고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작비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을 만큼 보잘 것 없고요. 출연배우는 온통 신인 뿐입니다. 주인공 낙만 역의 김준구, 어수룩한 중대장 역의 조지환, 광녀 역의 정예진, 인사계를 연기한 그의 오랜 동반자 양중경 배우겸 제작자가 전부입니다. 기성배우로는 살짝 정신이 나간 낙만의 아버지를 연기한 오달수 뿐이네요.
그래서 지난 4월 서울 독산동 축산물 도매시장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보충촬영하는 걸 지켜보면서 '한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엑스트라와 주연배우들이 섞여 있는데 도무지 아는 배우가 없었던 거죠. 현장 사정도 그리 풍족해보이진 않았습니다. 저녁에 스태프·배우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기대반 우려반'의 덕담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은근히 재밌습니다. 곽감독의 군대시절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낸 연출이 눈에 착 붙고요. 김준구·조지환·정예진 신인들의 연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 신인들은 곽감독이 SBS '기적에 오디션'에서 발굴해낸 신예들입니다. 당시 멘토였던 그는 자신의 멘티에게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이걸 지켰습니다. 그때 다른 멘토 밑에 있었던 신인들은 아직 얼굴 한 번 제대로 알리지 못한 상황이고 보면 곽감독의 의지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곽경택 감독의 연출 데뷔작 '영창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신의 아들'이라 불렸던 6개월 방위 낙만의 파란만장한 병영생활과 그보다 더 혼란했던 1987년의 시대상을 경쾌하게 버무렸습니다.
감독이나 배우나 모두 초심으로 똘똘 뭉친 느낌이 물씬 납니다. 곽경택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백조가 되고 싶은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사람들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고, 다른 하나는 내 스스로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초심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초심이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뉴 페이스의 뉴 퍼포먼스를 보고 싶으면 주저하지 마세요. 군대 얘기 싫어하는 여자분들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왜냐고요? 그때 그 시절 군대가 요즘이랑은 정말 많이 달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