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앞에선 '카리스마 제왕' 김남일(36)도, '풍운아' 이천수(32·이상 인천 유나이티드)도 작아졌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이지만 국가대표 발탁에 관한 얘기엔 누구보다 조심스러웠다.
12일 인천 유나이티드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K리그 클래식 경기는 0-0무승부로 끝났다. 승부를 내진 못했지만 김남일의 경기력은 만족스러웠다. 패스의 길목을 차단해 두터운 제주의 미드필더진을 잘 공략했다. 상황에 따라 롱패스와 잔패스를 섞은 경기 조율도 돋보였다. 정작 경기 결과보단 김남일의 경기력과 국가대표 재승선 여부에 관심이 쏠린 이유다.
경기 뒤 인터뷰 장을 찾은 김남일도 취재진의 질문에 피하지 않고 솔직히 답했다. 김남일은 진지한 표정으로 “국가대표에 관한 얘기가 나오고부터 많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제주전은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이 김남일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뒤 열린 첫 경기였다. 실제 신홍기 코치 등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인천을 찾아 김남일의 경기를 지켜봤다.
김남일은 “대표팀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런 부분에서 부담을 안고 경기 했다. 의식을 안 할 수 없었다”며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지만 결과가 썩 좋진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카리스마’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김남일이지만 대표팀에 관해 얘기할 때 만큼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기현이나 천수 등 2002 월드컵 멤버들과 대표팀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국가대표 발탁에 관한 내 얘기로 팀 분위기가 흐트러질까 걱정스럽다”고 말 한마디에 신중을 기했다.
경기력에 대해선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는 “2002년 이후로 경기력은 똑같았다”고 자신했다. 김봉길 인천 감독 역시 “경기력은 나무랄 데 없다. 원래 패싱력이나 시야가 좋은 선수인데 젊었을 땐 터프한 면이 부각됐다”며 “국가대표팀에 (김남일같은)베테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천수 역시 그동안 다소 들뜬 모습으로 경기 뒤 인터뷰에 응한 것과는 달리 차분했다. 이날 복귀 뒤 첫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놓찬 데 대해 "선수들 모두 승리하려고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내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특히 대표팀에 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선수라면 누구나 대표팀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갈 수 있다, 없다를 판단할 부분은 아니다”고 신중해 했다.
인천-제주전 중계를 맡은 한준희 KBS해설위원도 인천 베테랑의 플레이에 주목했다. 한 위원은 “김남일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넓은 시야에 의한 롱패스나 주변 동료들과 연계 플레이로 공격 지역으로 침투하는 모습 등 플레이메이커로의 모습 뿐 아니라, 전성기 못지않은 압박을 펼치고 있다. 볼 커팅은 더 노련해 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천수는 아직 K리그에서 더 보여줘야 하지만, 지금 김남일이라면 대표팀에 뽑혀도 이상할 게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