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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233. 차례에 대한 질문
추석이면 국민 모두가 차례를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한 조사에 의하면 차례를 지내는 사람은 전체의 1/5 수준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단 종교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복잡한 사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귀찮고 번거로워 싫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잘 위해야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도 잘 살 수 있는 데도 말이다.
영능력자로서 말하건대 차례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차례의 형식은 언제든 편하게 바꿀 수 있다. 만약 종교가 달라 차례를 지낼 수 없으면 간단히 망자를 위한 추모의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차례상의 법칙인 ‘조율이시 홍동백서’도 꼭 지킬 필요는 없다. 물론 이를 지켜 정성이 담긴 차례상을 올리면 좋겠지만 형편상, 사정상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간략하게 올려도 된다. 사실 영계는 우리가 사는 인간계와는 달라, 몸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례상을 올리는 건 음식의 '염(念)'을 먹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전에 먹었던 음식의 맛을 기억해 차례상에 차려진 음식들의 염체를 먹는다. 이 말은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을 반드시 형식에 맞춰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굳이 진짜 음식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얘기다.
특히 요즘 시대에 돌아가신 영가들의 경우 차례상 형식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였던 한 영가는 “차례나 제사 지낼 때 신선한 유기농 채소만 조금 올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생전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영가는 유기농채소와 녹즙·제철 과일 몇 개로만 구성된 간단한 상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면서 “절대 차례상에 돈을 많이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예 상을 차리지 말라는 영가도 있었다. 생전 IT업계에서 일하다 한창 나이에 생을 마감한 한 영가는 “차례도 게임처럼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면서 사이버 추모공간에 차례음식 아이템을 만들어 올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굳이 상을 차린다면 평소에 좋아했던 소형게임기와 시원한 콜라 한 잔만 상에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선 제삿날이지만 영계에선 생일이거든요. 1년에 하루라도 제 생일을 실컷 즐겨야죠.”
이쯤 되면 영계가 얼마나 변했는지 짐작하실 것이다. 영계에서 원하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차례 정신이다. ‘조율이시’는 없어도 되지만 ‘조율이시’ 정신만은 영원히 간직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한 가족이 후암선원을 찾았다. “이번 추석에 결혼 10년 만에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차례가 마음에 걸립니다. 미리 올리고 가도 조상님들께서 화를 내시지 않을까요?”
대답은 간단했다. “괜찮습니다. 조상님들도 충분히 이해해주실 겁니다.” 이 가족은 추석 전 미리 차례를 올리고 추석연휴에 해외여행을 즐겼다. 또 한 가족은 차례상을 차리는 형수님 건강이 좋지 않아 절에서 올리려고 하는데 괜찮을지 물었다. 역시 상관없다. 어디서든 조상님들을 기억하는 ‘조율이시’ 정신만 있으면 된다.
내가 걱정하는 건 차례의 형식이 아니다. 최소한의 차례 정신마저 사라지고 있는 현 시대가 걱정되는 것이다. 차례는 우리의 근본이요, 마음의 뿌리다. 언젠가 산 자도 영가가 된다. 영가가 되었을 때 우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차례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