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남(45)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현역 유니폼을 입을 것 같던 선수. 이제 그라운드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다. 지도자 길을 걸으려 한다. 다시 마운드에 오를 꿈은 아직 꺾지 않았다.
LG-kt전을 앞둔 1일 잠실구장. 원정팀 더그아웃 복도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한국 야구사에 '도전의 상징'으로 남을 선수, 바로 최향남이었다. 그는 지난해 3월 오스트리아야구리그(ABL) 소속팀 다이빙 덕스 입단 소식을 전했다. 독립 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뛰던 그는 2014년 9월 팀 해체 소식을 들어야 했다. 오래 전에 불혹을 지난 나이였지만 마운드에 서고 싶었다. '어디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향남은 지난해 ABL 정규시즌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ABL의 수준은 국내 고교야구와 비슷했다고 한다. 경쟁보다는 열정으로 경기를 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엄연히 계약이 존재하는 프로 리그다.
그런데 ABL 시즌은 올해 3월 28일(현지시간) 개막했다. 그런데 최향남은 한국에 있었다. 구단이나 선수 중 한쪽에서 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포기한 쪽은 최향남이었다. 최향남은 "다이빙 덕스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했다. 이어 "처음부터 1년만 있을 계획이었다. 경험을 쌓기 위해서 떠났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낯선 유럽 야구 무대에서 이력을 남겼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최향남이 최고의 투수는 아니겠지만, 가장 다채로운 경험을 한 투수다. 비견될 수 있다면, 1966년 이후 일본 프로야구와 미국 마이너리그, 멕시칸리그, 한국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했던 전 MBC 청룡 투수 이원국 정도다.
1990년 해태에 입단한 최향남은 1997년 LG로 옮긴 뒤 주력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어깨 부상으로 2003년 방출됐다. 뛸 팀을 찾다 무산되자 멕시칸리그까지 경험했다. 2004년 KIA 유니폼을 입었지만, 2005년엔 클리블랜드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다. 2007년 롯데에 입단했을 때도 '해외 진출 승낙'을 조건으로 걸었다. 롯데는 2008년 시즌을 마친 뒤 세인트루이스에 고작 101달러만 받고 이적을 승인했다. 다시 고배를 마셨고, KIA, 일본 독립리그, 고양 원더스를 거쳤다. 그가 갈아입은 유니폼 개수는 어느 선수보다 많다.
최향남은 "남들이 보기에는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내 미래를 만든다고 믿는다. 오스트리아행을 결정했을 때 '내게 아직 열정이 남아 있다'고 새삼 생각했다. 언제 유럽에서 야구를 해보겠는가. 지난 시간은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KIA 타이거즈 시절 최향남
지금 최향남은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지도자가 됐다. 경북 문경에 소재한 글로벌선진학교 고등 야구부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LG에서 뛰던 시절 한솥밥을 먹던 김혁섭 감독의 부탁이 있었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정식 코치가 아니기에 경기 중에는 멀찍이 떨어져 지켜본다.
원래는 전지훈련 기간 동안만 참여하려 했다. 하지만 최향남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는 "도움을 주면서 나도 몸을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원래는 외국으로 가 선교 활동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선수들의 열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최향남은 "나도 즐겁다. 6월까지는 학생들과 함께 할 생각이다"고 했다. 김혁섭 감독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 최 선배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다"고 전했다.
글로벌선진학교의 야구부 운영 방침에 공감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다. 훈련은 오후 3시에 시작해 길게는 6시간, 짧게는 3시간 동안 진행된다. 폭력은 물론 폭언도 없는 야구부를 만든다는 목표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야구를 즐기도록 돕는다. 학업을 병행하며 진로의 폭을 넓혀준다.
공부를 제쳐놓고 야구에만 매달려도 대학 진학이 쉽지 않다. '학습권 보장'을 허울좋은 말로 받아들이는 지도자와 학부모가 많다. 하지만 최향남은 생각이 다르다. 그는 "훈련량이 일반 고교보다 적기 때문에 한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운영해도 팀이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며 "학생 선수가 하루 온 종일 야구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선진학교는 지난달까지 진행된 전반기 주말리그(경상A)에서 1승 4패를 기록했다. 4연패를 당했지만, 지난달 17일 1위를 달리던 대구고를 상대로 스코어 6-5, 첫 승리를 거뒀다.
잠실구장을 찾은 1일은 1주일 동안 서울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야구단의 휴식일이었다. 과거 함께 뛰던 동료, 지도자를 만나 반가움을 나눴다. 궁금증이 생긴다. 최향남은 아직도 현역 복귀를 원하고 있을까.
현실은 인정한다. 그는 "이제는 몸이 예전같지 않다. 예전에는 미처 신경쓰지 못했지만, 구단 프런트의 생각도 이해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입에서 "현역 생활은 끝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복귀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다. 끝맺음은 확실히 짓고 싶다. 그는 "후반기, 내년 초 또는 당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1%에 불과하겠지만 희망은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내게 1%는 남이 생각하는 것보다 큰 숫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