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저주'가 풀렸다.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WS) 우승을 차지하며 108년의 한을 풀었다.
컵스는 3일(한국시간) 프로그레시브 필드 원정으로 열린 WS 최종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를 8-7로 꺾었다. 시리즈 전적 4승3패를 기록한 컵스는 지난 1908년 이후 무려 108년 만에 WS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4차전까지 1승3패로 밀려 패색이 짙었지만, 무서운 뒷심을 발휘했다. 역대 WS에서 1승3패 후 승부를 뒤집은 건 1985년 캔자스시티 이후 31년 만이다.
컵스는 1-1로 맞선 4회초 2득점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5회초 하비에르 바에즈의 솔로홈런과 앤서니 리조의 적시타를 묶어 5-1까지 달아났다. 승기를 잡은 컵스는 5회말 선발 카일 헨드릭스가 흔들리자 에이스 존 레스터를 불펜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2사 2·3루 위기에서 레스터의 폭투가 나왔고 5-3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자책하는 레스터를 포수 데이비드 로스가 위로했다. 로스는 6회 달아나는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레스터의 어깨를 가볍게 해 줬다.
컵스는 레스터의 호투 속에 7회까지 6-3 리드를 지켰다. 그러나 '염소의 저주'는 쉽게 풀리길 거부했다. 레스터가 8회 2사에서 안타를 허용하자 조 매든 감독은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을 투입했다. 그러나 5차전에서 2⅔이닝을 던진 채프먼은 특유의 시속 100+마일 강속구를 뿌리지 못했다. 브랜든 가이어에게 1타점 2루타를 허용한 뒤 라자이 데이비스에게 동점 투런홈런을 얻어맞았다. 데이비스의 홈런이 나오자 프로그래시브 필드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열기가 너무 뜨거웠을까. 9회 들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 팀이 득점 없이 9회를 마치자 심판진은 우천 중단을 선언했다. 20분 지연 끝에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우천 지연은 컵스에 행운으로 작용했다. 컵스 타선은 어깨가 식어 버린 브라이언 쇼에게 안타 3개와 볼넷 1개를 얻어 내 8-6 역전에 성공했다. 승기를 잡은 컵스는 10회 1점을 내줬지만, 마이크 몽고메리가 마지막 30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 치열한 대결의 마침표를 찍었다. 김선우 위원이 WS 7차전을 분석했다.
- 명승부 끝에 컵스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클리블랜드가 8회 동점에 성공했을 때 '컵스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9회 갑자기 비가 내렸고, 경기가 중단됐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경기가 20분 지연되는 동안 컵스는 전열을 추슬렀다. 반면 클리블랜드는 잘 던졌던 쇼가 갑자기 흔들렸다. '어깨가 식었다'는 표현도 있는데, 내 경험상 흐름이 깨졌다고 본다. 투수는 투구 리듬이 깨지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 20분 공백이 쇼의 흐름을 깨트렸다."
- 결승타를 때려 낸 벤 조브리스트가 WS MVP를 차지했다.
"동점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했다면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MVP를 받았을 것이다. 엄청난 활약을 했다. 경기 초반 분위기를 가져온 건 브라이언트의 '발'이었다. 상대 외야수의 어깨가 강하지 않다는 걸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뛰었다. 5회 리조의 적시타 때는 '런 앤드 히트'를 하더라. 작전이 나왔는지 파악되지 않았지만, 1루를 출발할 때 타이밍은 정말 완벽했다.
우승을 위해 데려온 조브리스트는 자신의 역할을 100% 해 줬다. 밀어 치고 당겨 치는 타격을 매우 잘한다. 상황에 맞는 콘택트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공이) 바깥쪽으로 들어오자 정확하게 밀어 치며 결승타를 만들었다. 만약 쇼의 커터가 높으면 짧게 끊어 쳤을 것이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확실하게 해 줬다."
- 지명타자 카일 슈와버의 활약을 포인트로 꼽았는데.
"매든 감독은 1·2차전에서 슈와버를 5번으로 기용했다. 오늘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했는데, 그를 2번 타순에 배치했다. 10회 결승점 과정에서 전략이 적중했다. 슈와버가 내야 안타로 출루했고, 브라이언트-리조-조브리스트까지 흐름을 이어 갔다. 아메리칸리그의 지명타자 제도가 내셔널리그 컵스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월드시리즈다."
- 매든 감독의 투수 교체는 어떻게 봤는가.
"내일이 없는 대결 아닌가. 감독은 모든 자원을 다 투입해 이겨야 한다. 레스터가 주자를 내보내면 채프먼 투입은 당연한 수순이다. 채프먼을 믿을 수밖에 없었는데,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면서 6차전 선발 아리에타까지 몸을 풀었다. 매든 감독은 전반적으로 투수 교체를 빠르게 했다. 반면 프랑코나 클리블랜드 감독은 조금 늦는 모습이었다. 클루버에 이어 필승조 밀러까지 실점하면서 힘든 싸움이 됐다."
- 브라이언트는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처리하면서 웃던데.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으면서 미끄러졌는데, 정확하게 송구해 경기를 마무리했다. 신체와 정신이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 경험상 자신이 그렇게 웃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TV를 보고 '내가 웃었구나'고 인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