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5월은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운 달이다. 야구장을 찾는 입장객도 가장 많다.
하지만 올해는 조기 대선으로 정치 바람이 거세다. 프로야구단 유니폼을 입은 대선 후보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유력 대선 후보 두 명이 독립 구단 고양 원더스를 찾은 적이 있다. 정치에 도전했던 야구인도 있었다.
1991년, 당시 31년 만에 부활한 지방선거에서 프로야구 스타 고(故) 최동원이 부산직할시 시의원 후보에 출마했다. 득표율 37.8%로 낙선했지만 선전이었다. 최동원은 야당 소속에 출마지인 서구는 부산에서도 소문난 보수 지역이었다.
최동원과 같은 사례가 일본에는 많다. 야구와 정치는 자주 손을 잡았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를, 야구인은 야구팬의 관심을 먹고산다는 데에서 공통점이 있다. 야구팬은 또한 유권자기도 하다. 하지만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대표적 인물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전설적 감독 고바 다케시다. 그는 히로시마(1975~1985년)와 다이요 웨일스(1987~1988년)에서 14년간 감독을 지내며 리그 우승 4회, 일본시리즈 우승 3회를 달성했다. 특히 1984년 일본시리즈는 히로시마의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 있다.
그는 2003년 히로시마 시장, 2004년 참의원 통상선거 비례대표로 출마했다가 모두 낙선했다. 히로시마 시장 선거에서는 5만7984표를 얻으며 3위에 그쳤다. 당선자인 아키바 다다토시가 18만 표를 얻어 시장에 당선됐다. 야구 인기와 정치 인기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또 고바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선거캠프 사무총장이 거짓 비방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 것. 다음해 비례대표 출마 때에는 자민당 득표율이 30.03%나 됐음에도 순번이 오지 않아 낙선했다.
당시 고바는 “선거는 야구처럼 되지가 않았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이어 “히로시마를 위해 야구 이상의 것을 하고 싶었지만 감독보다 어렵지 않았을까”라며 애써 웃는 모습을 보였다. 히로시마의 오랜 팬이자 유학파 출신인 다카기 히데토(62)씨는 “일본의 정치적 무관심은 심각하지만 투표를 하러 가는 사람들은 각각의 생각이 있다”며 “고바 감독이 시장의 무게감을 짊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고 당시 선거 분위기를 말했다.
고바 외에 프로야구 수위타자(1982년) 출신 나가사키 게이이치, 통산(1959~1976년) 2057안타의 에토 신이치는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낙선 결과를 얻었다. 현역 시절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선거에서는 맥을 못 춘 것이다. 보통 비례대표 투표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
프로야구 출신 후보들이 낙선하는 이유를 익명을 요구한 현직 참의원 사무실 비서관에게 들었다. 일본 정계는 프로야구 출신 후보의 입지를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스포츠나 예체능계 출신 후보는 팬층으로부터 가져오는 예상 득표가 있다. 인기 있는 프로야구 출신이라면 당선권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 말했다.
2007년 SK 와이번스 2군 투수 인스트럭터였던 고바야시 시게루는 1995년 '상쾌한 당' 비례 1번으로 나선 적이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감독 가와카미 데쓰하루가 주축이 돼 만든 정당이다. 하지만 당 자체가 지지율 1%가 되지 않았다. 고바야시는 뒷날 "선거 이후 빚더미에 앉았다"고 말한 바 있다.
2015년까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감독을 지냈던 나카하타 기요시는 선거에서 매우 '계산적'이었다. 나카하타는 2010년 참의원선거에서 소설가 출신인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 도지사로부터 출마 요청을 받았다. 요청을 받은 나카하타가 가장 처음 찾은 곳은 요미우리 신문사였다. 요미우리는 자기 구단 출신이 아니면 감독이 될 수 없는 '골품제'로 악명이 높다. 나카하타 역시 '진골 교진맨'으로 감독 하마평에 종종 오르던 인물이다.
신문사 고위층과 나가시마 시게오 명예 종신감독 등을 만난 나카하타는 자신의 감독 발탁 가능성을 타진했다. '가능성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카하타는 미련 없이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나카하타는 비례대표 후보로 11만여 표를 얻었지만 역시나 순번이 오지 않아 낙선 결과를 받아들였다.
편견을 깨고 당선된 이들도 있다. 한신 타이거스 출신 에모토 다케노리, 요미우리 전 감독 호리우치 쓰네오, 긴테쓰 버팔로스 타자 출신 이시이 히로오 등이다. 호리우치는 비례, 이시이는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아베 신조 총리는 대정부질문을 받는 자리에서 호리우치가 질문을 위해 단상으로 올라오자 “야쿠르트 스왈로스 팬으로서 호리우치 의원이 등판하는 날은 싫었습니다”라며 농을 나누기도 했다. 이시이는 자위대의 전쟁 참여가 가능한 평화헌법 개정, 언론 제재 찬성 등 정치인으로는 우익 행보을 하고 있다.
야구가 의원이나 선거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민주당 중의원 의원인 시나 다케시는 “프로야구 출신이라는 점으로 어필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며, “학창 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한 뒤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닌 코스가 좋다”고 했다. 시나 의원은 초중고 야구를 경험한 뒤 도쿄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끈기, 팀을 생각하는 마음, 동료들에 대한 배려 등 야구의 좋은 이미지가 정치인의 신뢰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나 의원 외에도 학생 야구 출신임을 강조하는 의원들이 여러 명 있다.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도요타 야스미쓰는 생전에 야구 선수 출신의 선거 출마나 사회 참여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야구계에서 국회에 사람을 몇 명 보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회는 프로야구의 승패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다. 안타깝지만 야구는 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요소가 아니다. 있으면 좋은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