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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594. 17년 만의 구명시식 참관
[차길진의 갓모닝] 594. 17년 만의 구명시식 참관
구명시식은 세월에 따라 변한다. 과거 구명시식은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면 현재의 구명시식은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춤과 노래가 있는 종합예술로 성장했다. 얼마 전 17년 만에 구명시식을 참관한 사람도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예전에는 아마추어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예술의 정점에 있는 느낌입니다.”
잠실 후암선원에서 구명시식을 할 때는 구명시식 가무단에 연극인들이 참여해 줬다. 최고 수준의 연극인들은 아니었기에 영가가 원하는 무대를 100% 보여 주진 못했다.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나의 영능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갔다.
재미있는 사건들도 많았다. 구명시식이 시작하기 전에 코드가 뽑힌 전화기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제사상의 음식들이 후드득 떨어지기도 했다. 조용한 구명시식 현장에서 손톱으로 다다미 긁는 소리가 들리고 배터리를 분리한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리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믿을 수 없는 영적인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영가들이 자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일까. 구명시식을 찾는 영가들도 교육이 많이 된 듯하다. 함부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행동은 잘 하지 않는다.
최근 건강 문제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침묵 속에서 구명시식을 올리고는 있지만 국가에 위기가 닥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순조롭게 구명시식을 마무리 짓고 있다. 17년 만에 구명시식을 참관한 사람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춤을 꼽았다.
P선생의 춤은 그냥 춤이 아니었다. 굿춤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아름답다는 춤사위들이 등장했다. 수준 높은 춤사위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연극에 가까웠던 구명시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굿의 춤사위를 응용한 무용극이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놀라운 발전이 있었다. 그 세월 동안 내 곁을 지켜 준 예술인들도 이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최정상의 예술인들로 성장해 있었다. 그날의 구명시식 사연도 다채로웠다. 오로지 나의 건강만을 위해 다섯 번이나 구명시식을 올려 준 사람도 있었다.
나이도 어려졌다. 20대 여성은 외국으로 유학 가는 동생을 위해 구명시식을 올려 줬다. 3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 주신 할머니를 위해 구명시식을 올렸다. 어린 시절,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숨진 아버지를 위해 구명시식을 올린 딸도 있었다. 일곱 살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진 딸은 이제 반백의 중년이 돼 있었다.
모두 눈물과 감동의 구명시식이었다. 구명시식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자기 부모에게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 자기 스승을 배신하고 욕하는 사람, 가정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 이 세 부류의 사람과는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구명시식을 하면서 늘 중간에 쉬거나 못 하게 될 때는 꼭 이런 분들이 한 명씩 있었다.
구명시식이 옛날과는 달라졌다. 노래도 춤도 음악도 과거의 구명시식이 아니다. 옛날 구명시식과 같은 부분이 있다면 나의 영능력 정도일 것이다. 17년 만의 구명시식에 참관한 사람은 전혀 다른 구명시식을 봤다면서 감격하며 돌아갔다. 연극에서 춤으로 그 장르를 변신한 구명시식. 앞으로 20년 후 구명시식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