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FA(프리에이전트)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기록? 성적이 전부는 아니다. 굳이 뭉뚱그려 이야기하자면 이른바 '존재감'이다.
매년 거품 논란이 크다. 10억원 넘는 연봉에 걸맞은 기록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대호(35·롯데)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4년 동안 150억원을 받는다. 연봉만 25억원이다. 올 시즌은 타율 320 34홈런 111타점을 기록했다. 뛰어난 성적이지만 리그 정상급으로 보긴 어렵다. 해외 리그에 진출하기 전인 2011시즌보다 타율과 장타율이 낮다.
과거의 경력을 바탕으로 삼아 미래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계약 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남기는 사례가 드물다. 전성기에 돌입했다고 평가받는 선수도 급격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상징성·시장 상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 FA 계약이지만 투자 대비 효율성은 사실상 높지 않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영입으로 평가되는 선수는 있다. 이대호 최형우(34·KIA) 차우찬(30·LG)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2017년 FA 시장에서 신기록을 썼다. 차우찬은 투수, 최형우는 외야수, 이대호는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 천문학적인 돈. 의구심도 당연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엔 사라졌다.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롯데가 5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이대호의 '존재 그 자체'다. 조원우 감독은 물론이고 동료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1점이 절실할 때는 "이대호에게 연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작용했다. 팀의 사기가 떨어졌을 땐 "내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이기자"는 이대호의 외침이 힘을 줬다. 4년 연속 하위권에 머물며 생긴 '패배 의식'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의미 있는 성적까지 따라왔다.
최형우는 올 시즌 타율 0.342 26홈런 120타점을 기록했다. 0.376 31홈런 144타점을 기록한 지난해보다는 좋지 않은 기록이다. 하지만 KIA의 정규 시즌 우승을 이끈 공신이다. 시즌 초반부터 선두로 올라서는 데는 그의 역할이 컸다. 무게감이 있는 4번 타자가 포진하자 모래알 같던 타선에 응집력이 생겼다. 8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하며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료들은 '최형우 효과'를 인정했다. 악착같이 출전 준비를 하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차우찬은 올 시즌 10승에 그쳤다. 다승 부문 리그 14위다. 승률도 0.588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이상 몸값 논란에 시달리지 않는다. 타선 침묵, 불펜 난조 탓에 쌓지 못한 승 수가 많다. 세부 기록은 리그 정상급이다. 피안타율(0.252) 이닝당출루허용률(1.19) 모두 토종 선수 1위를 기록했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내구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득점력만 지원된다면 확실하게 1승을 기대할 수 있는 투수로 평가된다. 데이비드 허프의 이적, 류제국의 부진 등으로 변수가 많은 LG의 마운드에 믿을 구석이다.
김현수(29)는 지난 21일에 열린 LG 입단식에서 현답을 남겼다. 115억원이라는 몸값에 걸맞은 성적을 묻는 질문에 "어떤 성적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LG가 나에게 매긴 가치에 대해 답을 찾을 생각이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경기장 안팎에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겠다"며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앞서 고액 계약을 한 몇몇 선수가 구체적인 목표 기록을 전했을 땐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다. 몸값에 비해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현수는 숫자 이상의 효과를 바라는 FA 계약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의 향상을 이끄는 역할. 고액 FA 선수에게 필요한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