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삼성 감독은 개막전 엔트리에 투수 11명을 넣었다. 이중 왼손 투수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베테랑 박근홍이 시범경기 부진에 빠지면서 임현준(30)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결과는 대성공. 개막 2연전에 모두 등판해 도합 1이닝 완벽하게 아웃카운트 3개를 책임졌다. 왼손 타자 오재원과 오재일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역할을 다 했다.
임현준은 특별하다. 더 상세하게 말하면 희귀하다. KBO 리그 1,2군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왼손 사이드암이다. 공을 놓는 지점인 직구 수직 릴리스 포인트가 올해 101.46cm(이하 스포츠투아이 기준)다. 슬라이더와 커브를 던질 때는 수직 릴리스 포인트가 98.2cm, 97.29cm로 더 내려갔다. 신장이 185cm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옆구리에서 공이 발사되는 셈이다.
2018시즌 개막 2연전에서 직구 수직 릴리스 포인트가 가장 높았던 제이슨 휠러(한화·204.99cm)와 비교했을 땐 103.53cm가 낮다. 그나마 투구폼이 비슷한 김대유(SK)와 비교해도 생소하다. 왼손 오버핸드에서 스리쿼터로 폼을 바꾼 김대유의 지난해 수직 릴리스 포인트는 149.43cm다.
스스로 선택한 '변화'다. 경성대를 졸업하고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지명을 받았을 때는 평범한 왼손 투수였다. 2007년 10월에 열린 제41회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MVP에 뽑힐 정도로 자질은 충분했다. 그러나 구속이 느렸다. 치명적이었다. 시속 140km를 넘는 게 쉽지 않았다. 고심 끝에 내린 게 투구폼을 바꾸는 거였다. 임현준은 "2015년 가을에 변화를 줬다. 원래는 오버로 던졌는데, 스피드를 내려고 하니까 컨트롤이 안 좋아지더라. 이렇게 흘러가면 팀을 떠나야 할 수 있어서 마지막 모험을 걸었다"고 돌아봤다.
구속은 머리에서 지웠다. 대신 컨트롤에 중점을 뒀다. 그는 "구속은 (팔각도를 내린 뒤)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버로 던졌을 때는 평균 시속 135km가 나왔는데, 지금은 120km 후반에서 130km 정도가 찍힌다"며 "그래도 컨트롤이 만족스럽다. 원하는 위치에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열린 잠실 두산-삼성전에 앞서 김태형 감독은 임현준에 대해 "제구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경기에서 위력을 직접 경험했다. 임현준은 8회 1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해 첫 타자 오재일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직구 최고 구속은 129km에 불과했지만,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변화구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했다. 이어 6구째 시속 113km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뽑아냈다.
마지막 탈출구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839경기에 등판한 하비에로 로페스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평범한 왼손 오버핸드 투수였던 로페스는 애리조나 시절이었던 2002년 팀 선배이자 왼손 사이드암으로 활약한 마이크 마이어스의 조언에 따라 릴리스 포인트를 낮추는 승부수를 던졌다. 구속이 88~92마일(141.6~148.1km)에 형성됐던 로페스는 컨트롤에 중점을 뒀고, 왼손 타자를 상대하는 원포인트로 롱런에 성공했다. 임현준이 그리는 야구 인생도 비슷하다.
참고한 선수는 로페스나 마이어스가 아닌 모리후쿠 마사히코(현 요미우리) 같은 일본인 투수다. 그는 "미국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니까 팔 높이가 달랐다. 나보단 대부분이 높았다"며 "모리후쿠는 투구폼을 흉내 내는 것보다 타자와 상대할 때 볼배합 같은 것을 눈여겨 봤다. 오른손 사이드암과 왼손 사이드암도 볼배합이 조금 다른데, 그런 부분을 체크했다"고 밝혔다. 모리후쿠는 왼손 사이드암으로 일본 국가대표까지 역임한 정상급 불펜 자원. 이어 "릴리스 포인트가 낮아지니까 변화구 각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횡으로 던질 수 있는 변화구가 생기니까 왼손 타자를 상대할 때 좋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한수 삼성 감독은 임현준에 대해 "웬만하면 원포인트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 타선이 (왼손-오른손-왼손으로 나오는) 징검다리면 한 명 더 가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25일 경기에서 오재일을 삼진 처리하고 스위치 타자 지미 파레디스까지 상대했다. 파레디스는 오른쪽 타석에 들어섰고, 임현준은 2구째 시속 126km 직구로 평범한 3루 땅볼로 아웃시켰다. 왼손 타자뿐만 아니라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도 가능성을 보였다. 그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궤도이기 때문에 오른손 타자도 어려워할 거로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야구 인생의 마지막일 수 있다.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고향팀 삼성에서 기회를 잡기 힘들다. 그래서 더 경기에 집중한다. 왼손 불펜이 부족한 팀 사정까지 맞물리면서 어깨가 무겁다. 그는 "처음 투구폼을 바꿨을 때는 허리와 무릎이 아프더라. 하지만 이젠 적응이 됐다"며 "감독님이랑 코치님께서 기회를 주셨으니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잘 하려고 노력하겠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왼손 사이드암 임현준의 2018시즌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그의 야구는 누구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