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고발 대상자로 지목 받으면서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은 배우 조재현이 또 한 건의 성폭행 혐의에 휩싸였다. 지난 20일 한 매체는 "16년전 조재현에게 방송국 화장실에서 성폭행 당했다"는 재일교포 여배우 A씨의 주장을 보도했다. A씨는 "당시 사건으로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2007년 배우의 꿈을 접은 채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지속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조재현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조재현은 "여배우 A를 고소하겠다"는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조재현 측 법률대리인은 "여배우A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2002년 합의하에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 A씨의 어머니가 협박해 7000~8000만원을 보내 주기도 했다"며 "조재현의 미투가 터진 후 3억원을 추가 요구하는 내용 증명이 날아놨다. 상대편 변호사가 손을 뗀 상황에서 모녀가 언론에 터뜨렸다. 21일 공갈 미수로 고소장을 접수할 것이다"고 밝혔다.
조재현은 지난 2월 첫 미투가 나온 후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배우 생활은 물론, 대내외적으로 맡고 있던 직책에서도 물러난 그는 3월 MBC 'PD수첩' 보도에도 특별한 움직임이나 언급없이 자숙을 이어갔다. "조사가 필요하다면 경찰 조사에도 임하겠다"는 뜻만 내비쳤을 뿐이다.
문제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수사의 방향성이 쉽게 잡히지 않았고, 고발의 의미를 퇴색시킬 정도로 미투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이뤄진 적은 없다. 그저 '사과 후 자숙' 수순을 밟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대중의 분노는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 이어졌다. 목적은 단 하나, 명확한 조사와 처벌이다. 조재현 역시 큼직한 성추행 의혹을 받을 때마다 청원 게시물에 이름이 오르 내리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 30부)에서는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고 볼 수 있는 연극계 대부 이윤택 감독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 감독은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을 맡았던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소속 극단 여성 단원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지난 4월에 기소됐다.
이 같은 만행은 단원들의 미투 운동 폭로로 알려졌고,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8명을 23차례에 걸쳐 강제로 추행한 혐의를 적용해 지난달 13일에 이 감독을 재판에 넘겼다. 첫 공판에는 증인 1명이 참석해 증인신문을 받았고, 증인은 이윤택 감독에게 당한 피해를 상세히 증언했다. 첫 공판에 첫 증인신문인 만큼 질문할 내용도, 따져 볼 내용도 많았다.
이윤택 감독의 재판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미투 가해자로 사법 판단을 받게 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윤택 감독은 피해자들에 대한 행위는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 이를 '성추행·성폭행' 카테고리로 묶지는 않고 있다. 혐의 자체는 부인하는 것. "연기지도였고, 교육이었고, 이를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었을 뿐 정당했다"는 주장을 고수 중이다.
앞서 악질 성추행 가해자로 찍힌 김기덕 감독도 '소송'을 결심했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 3월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이라는 제목으로 김기덕 감독의 미투(Me Too) 내용을 다룬 MBC 'PD수첩' 제작진과,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에 응한 여배우 A씨 등 2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3일 고소했다.
또 지난해 강제추행치상 등 혐의로 자신을 고소했던 여배우 A씨에 대해서는 '무고 혐의'로 추가 맞고소했다. '혐의없음'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PD수첩'에 출연해 자신에게 성폭행범, 강간범 이미지를 씌우고 성폭력 의혹이 있는 것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다.
피해자의 피해 정도와 미투 고발 대상자 즉 가해자들의 태도에 따라 재판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첫 재판을 시작한 이윤택 사건 역시 언제 결론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투'라는 큰 범위안에서 떨어질 첫 판결은 이후 비슷한 재판에 분명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사과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조재현 역시 여배우 A에 대해서는 고소를 택하면서 법정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조재현의 과거 행적이 더 깊이있게 드러날 수도 있다.
실추된 이미지는 결코 회복될 수 없지만, 대중의 심판은 이미 받고 있지만, 법적으로 이들의 잘못이 '공식화'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김기덕 감독과 이윤택 감독, 조재현까지 긴 싸움을 시작한 이들에게 그보다 더 긴 암흑을 살아 온 피해자들 앞에서 법은 어떤 심판을 내릴지 미투 운동 후폭풍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