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폐막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쟁 거리였던 병역 특례 문제에 다시 불을 지폈다. 표면적으론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전혀 다른 여론 속에서 귀국한 남자 축구대표팀과 야구대표팀이 이번 논쟁의 발단이 됐다. 대회 마지막 날 '숙적' 일본을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축구대표팀의 손흥민(26·토트넘)과 조현우(27·대구 FC) 등은 수많은 이들의 환호 속에서 당당히 병역 특례 혜택을 거머쥐었다. 같은 날 일본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낸 야구대표팀의 오지환(28·LG)과 박해민(28·삼성) 등은 '금메달 무임승차'라는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비난의 표적이 됐다.
이들의 금메달은 아시안게임이 병역 특례를 위한 편법적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비난과 함께 체육 분야 병역 특례 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아시안게임으로 인해 병역 특례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불거지면서, 이기흥(63) 대한체육회장은 '병역 마일리지' 제도를 제시했고 병무청도 이 문제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병역 특례 논란은 체육계에서 예술계까지 번져 나갔고, '국위 선양'의 일등공신인 K-팝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이 병역 특례 대상이 아니란 점을 들어 대중 예술에 대한 차별 논란이 제기된 상황이다. 일간스포츠는 이번 병역 특례 논란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논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에 이어 정희준 교수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운동선수도 군대에 가야 한다."
명확한 기준 안에서 탄력성을 적용한다. 정희준(53)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제시한 대안이다. 그는 운동선수의 병역 특례 문제가 화두로 던져진 2002년부터 목소리를 내 온 바 있다. 상대적으로 논란이 크지 않았던 시기부터 문제를 제기했고 개선을 모색했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정 교수는 증폭된 논란에 대해 기존 국위 선양 프레임이 사실상 끝났으며, 대중 정서 또한 확고하게 바뀌었다며 그 변화의 원인을 짚었다. "상대적 박탈감이 분노로 번졌다"고 했다. 팬덤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여론에 좌우된 정부의 실책도 꼬집었다. 개선책도 제시했다. 실현 가능성과 실효성을 떠나 명확한 기준이 있다. 운동선수, 예술인 모두 병역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 국민 정서가 싸늘하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02 한일월드컵,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후 반복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 정도까지 비난이 크지 않았다. 다른 분위기가 생겼다. 이제는 국위 선양에 대한 프레임을 대중이 관대하게 보지 않는 편이다. 촛불 민심의 화두가 '공정 사회' 아닌가. 박수받을 만한 일은 수긍한다. 그러나 '내 것을 빼앗아 간다'는 인식을 주면 다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왜 운동선수만 그런 혜택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는 이미 젊은 나이에 부를 얻었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분노로 번진 것이다."
- 야구대표팀에 유독 미운털이 박힌 선수가 있다. 증폭된 원인 아닐까. "종목 자체가 미운털이 박힌 게 아닐까. 선수 선발 때마다 '군대 면제용이구나' 하는 의심을 받았다. 구단의 로비 의혹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격이 부족한 선수가 발탁되지 않았나.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오지환은 문제였다고 하더라. '주전이 아닌데 멀티플레이어로 뽑아야 할 백업에 유격수만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뽑았다'며 말이다. 팬들도 아는 사실 아닌가. 이 점은 선동열 감독도 문제지만 아마추어 대회를 책임져야 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KBO에 모든 권한을 맡긴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총체적인 문제 속에서 질타받았다고 생각한다."
- 구단의 로비는 확인되지 않았다.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실이라면 큰 문제다. 국민의 세금으로 출전하고 병역 혜택까지 받는다. 만약 사전에 교감이 있었다면 엄격히 다뤄야 할 문제다."
- 축구는 상대적으로 발탁 과정에서의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경기력도 좋았다.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다. "축구대표팀도 말레이시아전에서 졌다. 결승전에서도 어렵게 이겼다. 일부 팬이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축구도 졸전이었다."
- 결과로 인해 여론의 심판이 달라진다. "정확히 여론이 아니라 팬덤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작금의 병역 특례 제도를 이렇게 만든 이들은 정치인이다. 이제 말을 아껴야 한다. 이미 국가의 제도나 정책이 팬심에 의해 좌우된 경향이 있다. 반복되면 안 된다."
- 문제점이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이상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면 답이 없다. 축소가 맞다. 나는 솔직히 폐지가 답이라고 본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와 대의적인 필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운동선수도 군대에 가야 한다. 탄력적인 적용을 하면 된다. 입대 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선택지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일찍 가면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는 혜택 정도라면 대중의 이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공백을 한 시즌으로 막을 수 있게 말이다."
- 다른 선택지는. "연기하면 은퇴 이후에 복무하는 것이다. 대신 기간은 현역보다 더 길어야 한다. 대체로 30대 중반 이후에는 은퇴하게 된다. 법적으로도 40세 이전에 병역 의무를 해결되면 된다."
- 병역 마일리지 제도가 대안으로 나왔다. "모든 종목에 적용할 수 없는 단점은 있지만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러나 전제가 면제가 되면 안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용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요 점수인 100점을 넘기면 입영 시기를 탄력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 대중문화 예술인들에 대한 병역 특례 확대 목소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문화 예술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 수가 없다. 팬심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기존과 같은 제도로 적용받는 게 맞다. 무엇보다 이미 그들 사이에서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 스티브 유(유승준)의 행보가 귀감이 됐을 것이다. 20대 초반에 가는 이들도 많다. 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성을 내세우며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애먼 의견이 나온다. 체육, 예술인들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 정부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 "합동 테스크포스(TF)를 만든다고 하지 않나. 그동안 논의 과정에서 용두사미가 됐다. 그래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신체적 장애가 없는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들은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러나 운동선수와 예술인은 시기 정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현장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 "물론이다. 그런데 운동선수가 군 복무하면 기량이 떨어진다는 것이 검증됐는가. 연구 결과가 있는지, 하다못해 확인은 해 봤는지 알고 싶다. 물론 종목마다 편차는 있다. 젊은 나이에 집중해야 하는 종목이 있다. 그러나 아닌 종목도 있다. 서건창·권오준·최향남·김사율 등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야구를 하지 못하고도 좋은 선수로 남은 선수가 많다. 김사율은 포병, 권오준은 해병으로 전역했다. '마지막 4할 타자'라는 메이저리그 전설 테드 윌리엄스는 참전만 두 번 했다. 진짜 군대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선수도 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무조건 핑계 대지 않으면 좋겠다."
- 병역 회피 의도가 뻔히 드러난 인원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나쁜 사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배운다. 그래서 예외 조항이 늘어나선 안 된다. 악습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오지환이 선발되지 않았다면 병역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목소리를 냈겠나. "논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반드시 변해야 하는 문제다. 발언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