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유정희(남, 38, 역사,고고학자다음은 ‘고조선 논쟁’으로 유명한 유정희(남, 38, 역사,고고학자/작가 :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하왕조, 신화의 장막을 걷고 역사의 무대로』,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 『그레이스 켈리와 유럽 모나코 왕국 이야기』,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본 조선왕조』, 『러시아 역사학자 유 엠 부틴의 고조선 연구』 등을 저/해제, 감수) 선생이 직접 쓴 칼럼이다.
최근 미국에서 한국 역사학을 대표하는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교수가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그의 유튜브 채널 이름은 ‘우물 밖의 개구리(The Frog Outside the Well)’이다.[1] 하버드 대학교에서 조선사 연구로 동아시아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이 대학자가 이렇듯 흥미로우면서도 다소 우스꽝스러운 채널명을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그의 채널에서 자신이 한국학자들과 한국사를 바라보는 관점(perspective)에 있어 차이가 있고, 그것을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싶어 점잖게 말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한국사 연구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접근법에 있어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듯하다. 그는 그의 채널에서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한국사 연구자인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읽고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One reason I’m thinking about this is one of the history books that I studied from. Lee Kibaik’s history was translated into English. The whole book has a lot of beautiful maps. All of Korea. Not one showing Korea in some sort of international context. So I think that there’s a certain view of seeing Korea in this limited context like the frog in the well."
"내가 이와 같은 생각(한국역사학계의 문제점)을 떠올리게 된 것은 전에 읽은 한 권의 역사책 때문이었다. 그 책은 바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이었는데, 이 책은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은 책 전체에 걸쳐 아주 잘 그려진 한국 지도들이 여러 장 실려 있다. 한국 전체를 조망해주는 지도들이 말이다. 문제는 단 한 장의 도면도 한국을 국제적인 맥락 속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바로 한국을 이렇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제한된 맥락에서 바라는 관점이 (한국사 연구에) 존재한다고 느끼고 있다."
필자 역시 피터슨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피터슨 교수는 조선사 연구자이기에 조선사를 중심으로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아마 그는 한국 고대사로 시야를 옮기면 자신이 지적한 문제가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여름 필자는 300년 전 프랑스 신부 쟝 밥티스트 레지(Jean-Baptiste Regis)가 쓴 고조선 건국과 초기 역사에 대한 문헌을 해제하여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라는 책을 펴내었다.[2] 이 고문서의 고조선 관련 기록을 제대로 해독, 교차 검증한 것은 필자가 처음이다. 이 사료가 수백 년 동안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 대학교의 문서실과 도서관에 공개되어 있었던 자료였음에도 이 가치를 제대로 알고 해독한 국내 한국 고대사 관련 연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피터슨 교수가 개탄을 금치 못했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레지 사료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을까? 우선 레지가 서술한 고조선 관련 내용에 선진(先秦)시대(Pre-Chin Period)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를 훈련시키는 과정에 중국 선진시대, 그중 주로 하상주(夏商周)를 커리큘럼으로 포함시키고 있는 한국 대학교는 사실상 거의 없기에 레지 사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한국 고대사 연구자가 드물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서구어 문제인데, 한국사 중 조선사와 같은 경우에는 영어독해 등을 대학원에서 어느 정도 강조하지만, 한국 고대사 같은 경우에는 서구어를 가장 멀리하는 연구 분야이기에 이런 사료가 존재하는 줄 거의 몰랐지만, 알았어도 그 누구도 건드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읽기도 부담스럽고 읽어도 하상주(夏商周)에 대한 지식이 없어 이해하기도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레지 신부는 고조선이 유구한 나라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증명해줄 유일한 ‘해외작성사료(historical record of Old Joseon produced by non-Korean writers)’를 남겼음에도 이를 제대로 아는 한국인 역사학자가 전무한 희극이 벌어졌고, 심지어 혹자는 방송에 나가서도 고조선이 요임금 시절에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국 측의 것이 아닌 ‘사료가 없기에’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신화적 이야기이다’라고 까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가장 최근 펴낸 『러시아 역사학자 유 엠 부틴의 고조선 연구』에 대한 해제를 작성하면서 이와 같은 안타까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유 엠 부틴은 남한과 서구측 자료는 물론 북한의 자료까지 모두 섭렵하여 고조선의 역사를 복원하는 책을 남겼고, 1982년에 처음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사실상 현대 서구 역사학자가 쓴 최초의 고조선 연구 단행본이다.[3]
그럼에도 학계에서 이 책은 굉장히 홀대를 받는 책이다. 서구의 한국사 연구자가 한국학계에서 홀대를 받는 것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 책은 굉장히 중립적으로 잘 쓰여진 책이기에 고조선 연구의 고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부틴의 ‘고조선 연구’ 대한 무관심은 다소 의도적인 면이 느껴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 한국학연구가 부진하다는 개탄을 하는 한국사 연구자는 많지만, 정작 서구어에 능숙한 이들은 많이 부족한 것으로도 보인다. 한국 고대사가 특히 그렇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서구어를 못하고 그런 이유로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는데 미국에서 한국학이 번성할 수 있을까? 유튜브가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피터슨과 같은 서구의 노학자도 이 흐름을 타고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 대중과 소통하려 하는 오늘날, 한국 역사학계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피터슨 교수는 조선사 연구의 대가이지만, 그를 소개해주는 위키피디아(Wikipedia) 문서는 아직도 없다(2019년 7월 기준). 미국인이 한국 역사 연구자를 소개해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한국 역사학자가 했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글 : 유정희(역사,고고학자/작가)
각주 [1] 피터슨 교수의 대표저서는 Mark Peterson, Korean Adoption and Inheritance: Case Studies in the Creation of a Classic Confucian Society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6)이다. 참고로 그의 유투브 채널은 한국어 자막이 달려있음으로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사 연구자도 충분히 시청할 수 있다. [2] 쟝 밥티스트 레지 저(유정희 해제),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아이네아스, 2018. [3] 유리 미하일로 부틴 저(이병두 역/유정희 해제),『러시아 역사학자 유 엠 부틴의 고조선 연구』, 아이네아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