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답답한 코로나정국, 건재한 류현진이 위안

사진=연합뉴스 제공

 
류현진(33·토론토)이 시범경기 두 번째 등판에서 미국 언론의 의구심을 비웃는 투구를 선보였다. 코로나19 정국 탓에 한국에선 스포츠 전반에 걸쳐 암울한 기운이 걷히지 않고 있는 상황. 그가 단비 같은 소식을 전했다.  

 
빅리그 선구자 박찬호(47)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때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며 국민에게 용기를 줬다. 야구 선수의 선전이 경제 위기 극복과 직접 영향은 없었지만, 닷새마다 긍정적인 기운을 전했다. 골프 선수 박세리(43)도 LPGA 무대에서 선물을 전했다.  
 
바통은 류현진이 이어받았다.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던 2014년에도 승전과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2020년도 그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민적 위기에 힘을 주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 활동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 "방역 물품이 필요한 대구·경북 의료진, 전 국민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말이다. 선배 박찬호처럼 자신도 힘을 내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10일(한국시간)는 본업에서 건재를 과시하며 위안을 안겼다. 미국 플로리다주 더디든 TD볼파크에서 열린 탬파베이와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4⅓이닝 동안 3피안타·무사4구·4탈삼진·무실점을 기록하며 호투했다. 토론토가 8-3으로 이기며 승리투수도 됐다. 시범경기 첫 승이다. 탬파베이 선발투수로 나선 2018시즌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블레이크 스넬은 1이닝도 채우지 못했다. 류현진과 비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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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파베이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이다. 류현진이 2020시즌에 가장 많이 등판하게 될 팀이다. 짜임새 있는 타선과 조직력을 앞세워 2019시즌에 동부지구 2위(96승66패)에 올랐다. 까다로운 타자들이 많다. 류현진은 주전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 멀티 내야수 조이 웬들과 다이넬 로버트슨 등 몇몇 주축 타자와의 사전 승부에서 기선을 제압했다. 
 
빅리그 데뷔를 앞둔 일본 리그 홈런왕 출신 쓰쓰고 요시토모와의 두 차례 승부도 압승했다. 1회는 2루 땅볼, 주자를 1루에 두고 상대한 3회는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쓰쓰고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구가 좋고 신중하다. 실투가 적은 투수다"는 소감을 남겼다. 
 
기어(Gear)를 갈아 끼운 모양새다. 본격적으로 2020시즌에 돌입했다. 류현진은 이 경기에서는 투구 수 64개를 기록했다. 이닝도 2020년에 나선 실전 경기 가운데 가장 많았다. 지난달 28일 미네소타전 이후 11일 만에 공식 경기 등판이었지만, 경기 감각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5일에 예정됐던 등판을 건너뛰고, 소속팀 마이너리거를 상대로 소화한 시뮬레이션 피칭을 통해 제구력을 더 정교하게 다잡을 수 있었다는 평가. 류현진도 탬파베이전이 끝난 뒤 "모든 구종에 제구가 전반적으로 잘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 
 
토론토는 들떴다. 찰리 몬토요 토론토 감독은 류현진의 훈련 방식과 루틴을 존중하며 거듭 신뢰를 보냈다. 가장 많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지켜본 이 날도 "편안함을 주는 투구다. 우리는 닷새마다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피트 워커 투수 코치도 훈련 환경과 실전 투구를 전적으로 그에게 맡긴 상황이다. 토론토 지역 매체 스포츠넷도 "예측하기 어려운 투구로 탬파베이의 승리 가능성을 없앴다"고 평가 했다. 이날 안방을 지킨 젊은 포수 대니 잰슨도 류현진의 제구력에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고. 류현진이 5회초 1사 뒤 마운드를 내려올 때는 TB볼파크를 찾은 팬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연례행사처럼 나오는 우려도 비웃었다. 최근 메이저리그 MLB.com은 류현진의 부상 이력을 짚으며 "튼튼하거나 예상이 가능한 투수는 아니다"고 했다. 토론토 구단이 그에게 안긴 계약(기간 4년·총액 8000만 달러)의 의미도 저평가했다. 그저 유망주들이 성장할 때까지의 연결고리 역할로 봤다. 값어치는 할 것이라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여준 호투다. 탬파베이전에서는 강점인 제구력이 유독 빛났다. 
 
류현진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투수는 단순히 던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며 "99마일짜리 공을 던지면 좋겠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부럽지 않다. 그저 신기하다"고 했다. 제구가 되지 않고 가운데로 몰리는 160km(시속) 공보다 현재 자신의 구속으로도 원하는 위치에 공을 던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 류현진은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다. 설득력이 강한 소신이자 자신감이었다. 실제로 부상 위험은 팔로만 힘을 쓰는 강속구 투수들이 더 많이 당한다. 
 
류현진은 3월 27일 홈구장 로저스 센터에서 열리는 보스턴과의 시즌 개막전에 선발로 나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는 "모든 일정을 정규시즌에 맞춰 준비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MLB.com은 지난 5일 "류현진이 향후 시범경기에 세 차례 등판할 전망이다"고 했다. 남은 보름 사이 두 차례 더 등판해 투구수와 이닝 그리고 구위를 끌어올린다. 
 
안희수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