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A팀)과 친선경기라도 치르게 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K리그 경기장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관찰하지만, 다 같이 모여서 발 한 번 맞춰보는 게 나한테나 선수들한테 좋은 기회니까요. 하지만 사실 다음 달 이후가 걱정입니다. K리그 끝나면 그때부턴 선수를 어떻게 점검할지….”
5일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입소 기자회견을 마치고 흡연실 한쪽에 앉아 홀로 담배를 태우던 김학범(60) 올림픽팀 감독과 마주쳤다. 표정이 어두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9, 1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두 차례의 대표팀 평가전 때문이 아니었다. 김 감독 머릿속은 내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 구상으로 복잡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다음 달 유럽파 위주로 대표팀을 소집해 해외에서 두 차례 평가전(A매치)을 치른다. 상대는 구했다. 장소와 시간을 확정해 조만간 발표한다. 대표팀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은 이번 달에는 국내파를, 다음 달에는 해외파를 직접 만나 소통하고 경기력도 점검한다. 반면, 올림픽팀은 상황이 다르다. 이달 두 차례의 대표팀 평가전 이후에는 계획이 없다. A매치 기간에 소속팀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선수를 불러 테스트할 수 있는 대표팀과는 사정이 다르다.
올림픽 남자축구는 23세 이하(U-23, 도쿄올림픽에 한해 24세 이하) 선수로 엔트리를 짠다. A매치가 아니기 때문에 선수를 불러도 소속팀이 차출을 거부할 수 있다. 평가전 상대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올림픽 남자축구는 16개국이 출전한다. 출전국과 평가전을 하는 게 가장 좋은데, 그럴 경우 상대가 15개국으로 한정된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선수단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좋은 방안이 없을까. 다음 달 A매치 기간에 도쿄올림픽 개최국 일본과 평가전을 제안한다. 미리 보는 ‘올림픽 축구 한일전’ 말이다. 우선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도쿄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서로 간 경쟁의식이 남달라 피차 괜찮은 스파링 파트너다. 흥행은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윷놀이도 한일전 아니던가.
때마침 두 나라 간 인적 교류의 통로가 열렸다. 한일 양국 정부가 서로 단기간 방문하는 기업인과 외교·공무상 출장자에 대해 일정한 방역 절차를 거치면 격리 조치를 면제하는 내용의 ‘기업인 특별입국절차’를 8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상대국 방문을 원하는 기업인은 초청기업이 작성한 서약서와 활동계획서를 대사관 또는 총영사관에 제출하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출국 전 14일간 건강 모니터링, 항공기 출발 72시간 이내 코로나19 검사 실시, 상대국 체류 시 적용할 민간의료보험 가입 등이 조건이다.
기업인과 외교관에 적용할 ‘특별입국절차’ 대상 범위에 ‘국가대표 운동선수’를 포함하면 절차상 문제가 없다. 입출국 시 2주 자가격리 부담이 사라지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맞대결할 수 있다. 양국 축구협회가 앞장서고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면 될 일이다.
올림픽팀 한일전은 모두에게 이로운 ‘윈-윈’ 이벤트다. 양국 올림픽팀으로서는 본선을 앞두고 선수를 점검하고 실전 감각을 다듬을 기회다. 팬들은 국가대항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양국 축구협회는 경기장 광고판과 중계권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 양국 모두 국내파가 올림픽팀 주축이라서 선수 차출 어려움도 없다.
한일 양국은 최근까지도 서로 냉랭했다. 외교적 갈등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문을 걸어 잠갔다. 단절됐던 인적 교류가 7개월 만에 재개된다. 축구가 그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담배 연기에 한숨을 섞어 내뿜던 학범슨(김학범 감독 별명)은 금연하게 될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