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잠실구장 LG 트윈스 사무실에 화환이 도착했다. ‘우윳빛깔 우리 감독님 꽃길만 걸으시길, 오빠한테 낚여서 27년째 엘지 팬 일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취임한 류지현(49) 감독을 위한 팬들의 깜짝 선물이었다. 류 감독은 “내 나이 벌써 50세다. 오빠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얼굴만큼은 환했다.
야구계는 류 감독의 LG 사령탑 부임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류 감독은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1994년 입단해 신인왕을 차지했다. 줄곧 1번 타자와 유격수로 활약했다. 2004년을 끝으로 은퇴한 뒤, 코치생활도 LG에서 했다. 27년(2007~08년 시애틀 매리너스 연수 포함) 동안 원클럽맨이었다. 감독 부임 직전에는 수석코치로 류중일 전 감독을 보좌했다. 그보다 LG를 잘 아는 이는 없다.
류 감독은 “(류중일)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함께 한국시리즈(KS) 진출의 꿈을 이루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솔직히 감독이 된 건 기쁘지만, 류중일 감독님과 함께 더 높은 곳에 가고 싶었다. 코치로서 잘 보좌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거듭 말했다.
류 감독은 2020시즌 류중일 감독으로부터 “네가 만약 감독이 되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가르침을 받았다. 핵심 주제는 “참고 또 참으라”는 것이었다. 류 감독은 “공교롭게도 프로에서 첫 감독이셨던 이광환 감독님께서 ‘참을 인’(忍)자가 담긴 액자를 보내주셨다. 존경하는 분들의 애정을 느끼며, 선수들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말했다.
류 감독 부임을 반기는 팬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순혈주의’에 대한 우려다. 김동수 코치가 수석코치를 맡고, 조인성 코치가 두산을 떠나 LG로 돌아왔다. 투수코치 역시 LG 출신으로 구성할 전망이다. 류 감독은 “염려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코칭스태프에 합류할 김민호, 이종범 코치는 LG 출신이 아니다.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나보다 선배이고 LG 출신이 아닌 코치도 함께한다. 마음과 귀를 열고, 조언은 적극적으로 듣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겨울 류 감독은 투수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류중일 감독님이 구성한 올해 선발진은 성공적이었다. 정찬헌, 이민호, 김윤식이 열흘에 한 번씩 마운드에 오른 게 주효했다. 내년에도 6~7명의 선발투수를 활용할 생각이다. 대신 등판 간격을 조정해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고우석, 정우영, 이민호, 김윤식 등 젊은 투수가 성장한 덕분에 투수진 고민은 상대적으로 적다.
타순과 포지션에 대한 그림은 완성 단계다. LG는 홈런 2위(38개)에 오른 로베르토 라모스와 재계약했다. 주전 1루수 및 중심타자 고민은 덜었다. 류 감독은 “김현수가 가끔 1루수로 나섰는데, 이제는 좌익수로 고정하려 한다. 현수도 이제 나이(32세)가 있다. 포지션과 체력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출루율 6위(0.411) 홍창기는 1번 타순에 고정할 계획이다. 류 감독은 “창기는 원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조급해하지 않는 게 장점이다. 그러면 오히려 상대 투수가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수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LG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트레이드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류 감독은 “NC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내야수 이상호는 수비 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다. 구본혁과 함께 활약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단 구성상 세밀함과 스피드가 다소 떨어진다. 이 부분을 보완하면 더욱 짜임새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