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는 '야구판 극한직업'이다.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 내내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한다. 다른 포지션보다 체력 소모가 크고, 부상 위험도 높다. 그래서 공격에서의 기대치가 낮다. 수비만 잘해도 'A급 선수'로 인정받는다. 풀타임을 소화하기 어려워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 명함을 내밀기도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NC 양의지(34)는 '별종'에 가깝다.
올 시즌 양의지는 '포수 타점왕'에 도전 중이다. 팀이 치른 첫 52경기에서 47타점을 쌓았다. 경기당 0.90타점. 8일 기준 KT 강백호와 타점 부문 공동 선두다. 노시환(한화·46타점), 나성범(NC·44타점), 김재환(두산·44타점) 등과 타이틀 경쟁에 돌입했다. 4월(23경기·23타점)과 5월(22경기·21타점) 월간 성적에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꾸준하다. 기복이 없다는 건 그의 가장 큰 장점. 산술적으로 130타점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0시즌 기록한 개인 한 시즌 최다 타점(124타점)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페이스다.
지난해 양의지는 2010년 조인성(당시 LG·107타점), 2015년 이재원(당시 SK·100타점)에 이어 역대 세 번째 '포수 100타점' 금자탑을 쌓았다. 하지만 멜 로하스 주니어(당시 KT·135타점)에 밀려 '포수 타점왕'을 눈앞에서 놓쳤다. KBO리그 역사상 '포수 타점왕'은 이만수(1983·84·85·87)와 유승안(1989) 둘뿐이다. 공격형 포수의 표본'으로 불리는 박경완(전 SK)은 물론이고 강민호(삼성)도 달지 못한 훈장이다. 1년 전 아쉬움을 뒤로하고 양의지가 먼지 쌓인 기록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부상 등 돌발 변수만 없다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타격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19년 타율 0.354로 타격왕에 올랐다. '포수 타격왕'은 1984년 이만수(당시 삼성·0.340) 이후 35년 만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포수로는 사상 첫 3할 타율-30홈런-100타점이라는 기념비적인 발자취까지 남겼다. 더 놀라운 건 찬스 집중력. 올 시즌 양의지는 주자가 없는 상황에선 타율 0.349. 주자가 있을 때도 0.353로 수치가 높다. 득점권에서는 배트가 더 매섭게 돌아간다. 득점권 타율 0.471으로 리그 평균(0.274)을 크게 상회한다. '포수 타점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이호준 NC 타격 코치는 "(올 시즌) 양의지 앞에 나오는 타자들이 득점권 상황을 많이 만들어주고 있다"며 "여러 가지 수치로 봐도 주자 유, 무에 상관없이 잘 치고 있다. 중심 타자는 득점권에서 주자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부담을 느끼지만, 양의지는 다르다. 팀의 주장과 고참으로 '꼭 불러들이겠다'는 책임감도 있고, 득점권 상황을 즐긴다"고 평가했다. NC는'테이블 세터' 박민우와 이명기의 출루율이 4할 안팎이다. 타점 기회가 양의지를 비롯한 중심 타선에 자주 연결된다. 타점왕에 도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양의지는 담담하다. 그는 "이호준, 채종범 타격 코치님께서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공 배합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그게 도움이 된다"며 "타점 타이틀에 큰 욕심은 없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