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탈리아, 스페인, 파키스탄, 멕시코, 캐나다, 아르헨티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 나라는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깝지 않다. 특별히 이들 간의 교역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들은 커피 클럽 멤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커피를 사랑해서 이들이 뭉친 것은 아니다.
유엔(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는 P5라고 불리는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이 있다. 비상임이사국은 2년의 임기로 대륙안배를 고려해 선출된다.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15개국 중 9개국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특히 P5 모두가 찬성해야 한다. 즉 P5 중에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상임이사국에 진입하려는 이들이 있다. 바로 G4라고 불리는 브라질, 독일, 인도, 일본이다. 4개국은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서로 협력한다. 커피 클럽은 G4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로 뭉친 그룹이다. 한국은 일본을 반대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독일, 파키스탄은 인도, 아르헨티나와 멕시코는 브라질을 반대한다. 캐나다는 상임이사국 확대에 반대한다.
1990년대 초반 유엔에서 이탈리아의 주도로 이집트, 파키스탄, 멕시코가 모여 상임이사국 확대에 반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1998년 결성된 커피 클럽에 한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이 참여하며 세력이 커졌다. 커피 클럽이란 별칭은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하는 비공식 모임’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정식 명칭은 ‘합의를 위한 연합(UfC·Uniting for Consensus)’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남미 대륙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문화권을 각각 대표한다.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대륙의 63%에 이른다. 이 둘은 오랜 지역 라이벌이기도 하다. 19세기 초반 우루과이가 브라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일 당시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 편을 들면서 브라질과 전쟁을 했던 악연도 있다. 하지만 1840년대 국력이 상승 중인 내륙국 파라과이가 항구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은 삼국동맹을 맺고 이에 대항했다.
2세기가 넘는 동안 두 나라는 전쟁과 경쟁에서 시작해 우정과 동맹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이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중남미 지역 세력 균형에 변화가 불가피하고 이에 따른 불안정을 이유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반대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여러 분야에서 경쟁했다. 두 나라가 아직도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는 스포츠다.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두 나라는 대립하지만, 이들이 가장 치열하게 부닥치는 종목은 단연 축구다. 친선경기마저도 첨예하게 경쟁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미국의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은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축구 국가 라이벌이라 칭하기도 했다.
1914년 두 팀이 첫 경기를 벌인 이후 이들은 2021년 11월 기준으로 109번 맞붙었다. 아르헨티나가 40승, 브라질이 43승을 거둔 가운데 무승부는 26번 나왔다. 두 팀이 기록한 골도 아르헨티나(163개), 브라질(165개)로 팽팽히 맞선다.
1946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결승에서 만난 두 나라는 대형사고를 쳤다. 경기 중 브라질의 핀토가 아르헨티나의 주장 살로몬의 경골과 비골을 골절시키자 두 팀은 난투극을 벌였고, 관중은 경기장에 난입했다. 중단됐던 경기는 질서가 회복된 후 계속되었고 아르헨티나의 2-0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 경기의 후유증으로 두 나라는 그 후 10년 동안 경기를 갖지 않았다.
한편 2014 월드컵을 개최한 브라질은 준결승에서 독일을 만나 1-7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대패한다. 결국 결승전에 아르헨티나와 독일이 올라가자, 브라질은 좌불안석이 된다. 아르헨티나가 자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 모습을 브라질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홈 팬들은 독일을 간절히 응원했고, 결국 우승은 독일이 차지했다.
1998년까지 월드컵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만을 번갈아 가면서 개최되었다. 이에 2002년에는 다른 곳에서도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경제 강국이었던 일본이 선수를 치고 나갔다.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 한국은 일본의 월드컵 유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에 한국도 월드컵 유치를 선언한다.
초반에는 일본이 앞서 나갔다.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벨란제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들었다. 전통적으로 일본과 친했던 브라질은 축구황제 펠레까지 가세했다. 또한 1966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잉글랜드의 보비 찰튼도 일본의 공식 대변인이 되었다.
그러자 아벨란제 회장의 전횡에 맞서 FIFA를 개혁하고 싶었던 UEFA(유럽축구연맹) 회장 레나르트 요한손이 한국편에 선다. 브라질과 앙숙인 아르헨티나도 한국 지지를 선언했다. 1995년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과 디에고 마라도나는 방한해 한국의 월드컵 유치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마라도나가 한국을, 펠레가 일본을 위해 뛰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남미는 한국(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페루)과 일본(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파라과이)을 지지하는 나라들로 양분됐다. 이렇게 전 세계 축구계가 갈라지자 2002 월드컵은 역사상 최초로 공동 개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는 유엔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2019년 아르헨티나의 주요 언론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단독 표기해 주목받았다. 2021년 상원은 매년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들이 한국을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긴밀히 협력하는 브라질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울 뿐이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역시 “적의 적은 친구다”.
2002 월드컵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돼 일본에서 조별 경기를 갖는다. 당시 일본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은 잉글랜드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찬밥 취급을 받았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앙숙인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석연찮은 페널티 킥 판정 때문에 0-1로 패했고, 스웨덴과 1-1로 비기며 16강 진출에 실패한다.
경제위기에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잠깐이라도 꿈을 주고 싶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통곡했다. 그라운드 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불렸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도 눈물을 훔쳤다.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2022년은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국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받아 개최한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의 라스트 댄스가 보고 싶다.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에 행운이 따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