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가 술렁거리고 있다. '배구 여제' 김연경(35)이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선수와 팬 그리고 배구계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흥국생명팬은 지난 15일 웃고 울었다. 홈 경기에서 페퍼저축은행에 완승을 거두며 시즌 처음으로 리그 단독 1위(21승 7패·승점 63)에 올라섰지만, 김연경이 은퇴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경기 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불거진 은퇴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전하며 "은퇴 생각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현재 구단과 조율 중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김연경이 직접 전한 은퇴 고민 배경은 여느 스타 플레이어와 다르지 않았다. 정상에 있을 때 명예롭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내려오는 게 좋다"고 했다.
김연경은 16일 기준으로 2022~23시즌 여자부 공격종합 1위(46.02%) 득점 5위(530점)에 올라 있다. 30대 중반이 넘어섰지만, 현재 V리그에서 그보다 뛰어난 공격수를 꼽기 어렵다. 유럽·중국 무대를 누비던 전성기와 비교해도 에이징 커브가 느껴지지 않는다.
프로야구 선수였던 이대호는 은퇴를 예고하고 보낸 마지막 시즌(2022)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지명타자 부문)를 수상했다. 선수·지도자·팬 모두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그가 떠나는 걸 납득하지 못했다. 친분을 떠나 이대호의 뒷모습이 김연경이 심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비단 이대호뿐 아니라 박세리·김연아 등 다른 스포츠 선수들이 사례로 참고했을 것 같다.
김연경은 터키·중국 리그를 거치며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했다. 기량·성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른 선수나 팬 그리고 언론의 시선보다 엄격할 수도 있다. V리그 각 지표 상위권에 랭크됐다고, 김연경이 만족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상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김연경이다. 전성기보다 기량이 떨어졌다는 느낌은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프로 선수 가치를 대변하는 계약 문제도 복잡하다. 이대호도 2021시즌을 앞두고 임한 재계약 협상에서 기간을 두고 줄다리기를 했고, 결국 팬들의 기대보다는 짧은 2년 연장에 합의한 뒤 은퇴까지 예고했다. 롯데 입장에서도 우리 나이로 40대 선수와 3년 이상 장기 계약을 주저 없이 할 순 없었을 것이다.
김연경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 어차피 유럽 구단에서 받던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는 V리그 구단은 없었다. 어차피 V리그에서 뛰는 것 자체가 그에게 돈은 우선순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처음 V리그로 복귀했던 2020년, 자신이 입단해 샐러리캡(연봉 상한선) 관련 문제가 생길까 봐 스스로 연봉을 깎기도 했다.
아무리 비즈니스 논리로 움직이는 프로 스포츠지만 다른 가치를 추가하는 선수도 있다. 김연경이 은퇴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요인은 결국 자신이 V리그에서 더 뛰어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아닐까.
김연경은 세계 무대에서 최고 수준의 실력을 보여주며 배구팬뿐 아니라 한국인에게 자부심을 줬다. 2022~23 V리그 정규리그가 8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 만약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면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를 볼 수 있는 시간과 경기 수는 너무 부족하다.
물론 그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방송 활동 등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정상에서 물러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마음을 굳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고민 중이라면, 가장 이상적인 이별 방식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배구팬이 벅찬 마음으로 응원하며 그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