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 학원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약음료’ 사건으로 청소년을 겨냥한 마약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10대 마약사범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마약 중독과 정신질환범죄심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조성남 국립법무병원 원장을 만나 청소년의 마약 중독 사태를 들여다보고, 중독 치료법과 함께 마약에 대처하는 올바른 가족의 대응 자세까지 알아봤다.
‘중독 취약층’으로 떠오른 10대 마약사범
조성남 원장이 몸담고 있는 국립법무병원은 국내 유일의 범법정신질환자 입원 및 치료 기관이다. 1988년 법무부 치료감호소 특수치료과장을 시작으로 일반정신과장 등을 거친 그는 35년 넘게 마약 중독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재활 및 치료하는 임무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충격적인 ‘마약음료’ 사건을 접한 그는 ‘전형적인 마약쟁이’의 수법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어난 ‘마약음료’ 사건은 조직범죄다. 아이들에게 중독시킬 목적으로 퍼트리는 수법”이라며 “처음에는 음료처럼 무료로 나눠주다가 차츰 입문자를 늘이고 중독되게 만드는 전형적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마약이 아이들의 공간인 학원가에 등장할 정도로 생활반경 내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조 원장은 청소년들이 ‘중독 취약층’이라는 점을 파고든 범죄라 더욱 경계심을 높였다.
그는 “이제 청소년들도 마음만 먹으면 5만~10만원으로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다”며 “SNS나 채팅을 통해 ‘마약 은어’로 쉽게 마약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 청소년 등 젊은 층이 기술적으로 가장 빠르다”며 “그래서 젊은 층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을 전혀 모른 채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마약’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마약 김밥’, ‘마약 핫도그’ 등 마약이라는 단어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심지어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내포돼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원장은 “일단 마약이라는 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며 “청소년들이 마약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니 제조방법까지 공유되는 등 정보의 유혹 속에서 파급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의 ‘마약류 사범 단속 현황’에 따르면 10대 사범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9세 이하 마약류 사범은 481명으로 집계됐다. 9년 전인 2013년 58명인 것과 비교하면 8배 이상 불어났다.
특히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15~18세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 291명에 달했다. 2016년 55명과 비교하면 5배가 넘게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 15세 미만의 마약류 사범도 2021년 6명 수준에서 지난해 41명까지 불어났다.
도덕적·사회적 기준 생성 이전 ‘중독 치명타’
지난해 창원에서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는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구매해 투약·소지한 59명이 무더기로 검거됐던 사건이 발생했다. 충격적인 건 59명의 피의자 중 10대가 47명이나 됐다.
조 원장은 대표적인 10대 마약사범들의 케이스로 ‘창원 사건’을 꼽았다. 이들은 생긴 모양이 나비처럼 생겨 속칭 ‘나비약’으로 불리는 이 식욕억제제를 자기 또는 타인 명의로 처방받은 뒤 SNS를 통해 판매하거나 투약·구매·보관한 혐의로 검거됐다.
조 원장은 마약류를 쉽게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의 경우 중독에 쉽게 노출되고, 치료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약의 중독의 기전을 설명하자면 일상생활에서 칭찬을 받거나 기분이 좋을 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돼 쾌감을 느끼게 되는 구조”라며 “예를 들어 일반적인 성취 시 도파민이 300개가 분비된다면 마약의 경우 500~1000개로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독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마약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일상생활에서는 '뇌의 보상 시스템’에 따라 도파민이 부족하지 않게 순환된다”며 “하지만 마약으로 도파민을 강제로 쏟아지게 만든다면 이 뇌 시스템이 파괴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 순환적으로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지 않는 도파민을 더 채우려면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셈”이라며 마약 중독의 원리를 설명했다.
마약 중독자들이 계속해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것은 뇌의 정상적인 보상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또 보상 시스템의 파괴는 뇌의 구조 변형을 불러일으켜 건강상 큰 문제를 야기한다.
마약 중독자를 계속 접하는 조 원장은 “중독자의 뇌를 살펴보면 전전두엽의 손상이 심해 올바른 판단과 실행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전전두엽뿐 아니라 뇌의 다른 부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환각, 환청, 망상 등이 발현하고, 메스 마우스(심각한 잇몸 손상), 메스 버그(몸을 계속 긁어 내는 상처) 현상이 발생한다”고 마약 중독의 부작용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의 경우 마약 중독을 이겨낼 수 없는 ‘사회적 내성’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경계해야 한다.
조성남 원장은 “청소년들은 마약 중독의 초기 단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며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해 사회적·도덕적 기준에 대해서도 아직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라 중독에 빠질 위험이 더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회복되지 않고, 계속해서 중독이 진행되면 치료는 더 어려워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마약청정국이던 대한민국이 마약관리국으로 추락했다. 인터넷 메신저에서 ‘톡’ 서너 번으로 마약이 안방까지 배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약사범의 나이도 어려져 10대 청소년 범죄자가 4년 새 3배 증가했을 뿐 아니라 마약을 하는 것을 넘어 유통까지 하는 상황이다. 일간스포츠와 이데일리는 청소년 마약 퇴치 캠페인 ‘하지마!약’을 시작하면서 심각한 청소년의 마약 실태와 원인, 해법을 심층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