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약자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가. 왜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는가. 그렇게 묻는다면 다르덴 형제 감독의 답은 “우리도 모르겠다”다.
최근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내한한 다르덴 형제 감독을 전주시 완산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다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왜 그렇게 아이들이나 취약계층의 일에 관심을 두느냐고 하면 글쎄요,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마 저희는 어른과 아이들 무슨 관계인지. 그 관계 사이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뤽 다르덴)
벨기에 출신의 다르덴 형제는 브뤼셀 예술대학에서 연극과 연기를 배운 뒤 영화계에 입문했다. 초반에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나, 1996년 영화 ‘약속’을 계기로 극영화 연출로 전환했다. 주로 동생 뤽 다르덴이 시나리오를 쓴다. 극 영화 역시 사실감을 살린 다큐멘터리적 연출이 특징이며, 주로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쏟았다. 영화 ‘로제타’(1999)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 ‘자전거 탄 소년’(2012)으로 심사위원 대상, ‘소년 아메드’로 감독상을 받을 만큼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토리와 로키타’ 역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 속 두 아이들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해 난민 신청을 한 두 아이에겐 쉬운 일이 하나 없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체류증을 받는 일도. 제네바 아동 관련 협약에는 만 18세 이하의 아이들이 난민 신청을 하면 무조건 받아주도록 돼 있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이 수월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토리와 로키타’의 시나리오를 쓴 동생 뤽 다르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미와 박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로키타(졸리 음분두)는 여자고 미성년자예요. 더 취약한 상태인 거죠. 영화를 보면 자전거 타는 아이들의 장면이 나와요. 얼마나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보여주는 거죠. 그 아이들이 꿈꾸는 사랑, 인간미, 박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다르덴 형제 감독의 작품들 가운데는 유독 벨기에 동부의 리에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다. 한때 철강도시로 크게 번영했으나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가 닥치며 쇠약해진 도시.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향한 부채감이 다르덴 형제 감독에겐 있다고 했다. ‘토리와 로키타’ 이전 ‘로제타’, ‘아들’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뤽 다르덴 감독은 불법이민자와 한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약속’(1996) 촬영 때를 떠올렸다. “부채감이라는 단어가 딱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마음이 있다”고 운을 뗐다.
“‘약속’이라는 영화를 찍는데 밤에 10살짜리 꼬마 아이 하나가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계속 촬영팀을 따라다니면서 밥차에 같이 앉아서 밥도 먹고 그랬던 게 기억나요. ‘아들’을 찍을 때도 14살짜리 여자아이 하나가 촬영팀 주변을 맴돌았죠. 두 아이 모두 가난한 집에서 살고 있었어요.”
1979년대 중반 경제위기가 몰아친 이후 여러 마피아 갱단이 리에주에 들어왔다. 마약이 암암리에 퍼져나갔고, 도시는 점점 더 쇠약해졌다. 부모 세대 때는 잘살았지만 어느 순간 어려워진 도시에 남겨진 아이들. 뤽 다르덴 감독은 “그 도시가 마치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나쁜 일을 담은 작은 연구소처럼 느껴졌다”며 “그런 현상이 젊은 세대에게는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라고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그 아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산증인 아닐까요. 우리 형제가 영화를 찍는 건 그러한 현상에 대한 증인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부채감을 해소하겠다는 게 아니라 빚을 갚는 거죠. 그리고 소외계층의 사람들을 스크린 중심에 놓으려면 그것에 걸맞은 스토리를 찾아야겠죠. 그들의 존엄성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스토리요.”
형인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은 영화의 말미를 관심 있게 봐 달라고 주문했다. 영화 말미에 토리(파블로 실스)가 하는 말과 부르는 노래가 영화에서 하고자 했던 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냥 저희는 그 사람들(사회소외계층)의 입장을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들과 더 대화를 나누고 싶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요. 그들을 우리 작품의 중앙에 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토리와 로키타’는 새 삶을 찾아 벨기에로 이주한 토리와 로키타가 서로에게 보호자가 돼주며 함께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10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