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의 타격 성적표는 어색하다. 시즌 첫 31경기(팀은 33경기) 타율이 0.232(125타수 29안타). 규정타석을 채운 62명의 선수 중 52위에 머무른다. 최소 3000타석 소화 기준 역대 타격 1위(0.338), 지난해 KBO리그 역대 네 번째 '타격왕 2연패'를 달성하며 타격 5관왕(타율·최다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에 데뷔 첫 최우수선수(MVP)까지 수상한 그이기에 2할대 초반 타율이 더 낯설다.
공교롭게도 오프시즌 타격 폼에 손을 댔다. 시즌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 자격을 얻는 이정후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도전 의사가 강하다. MLB 선수들의 빠른 공에 대처하려고 겨우내 보폭(스탠스)을 좁히고 배트 잡은 팔의 높이를 낮춰 테이크 백(스윙하기 전 배트를 뒤쪽으로 약간 빼는 동작)을 간결하게 만들었다. 3월에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바뀐 타격 폼을 실험했고 곧바로 정규시즌에도 적용했다. 그런데 각종 타격 지표가 급락하면서 조급함이 커졌다.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타격 슬럼프가) 길어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진짜 이정후의 부진은 심각한 수준일까. 눈여겨볼 그의 기록 중 하나가 BABIP(Batting Averages on Balls In Play)이다. BABIP는 홈런이나, 삼진, 볼넷을 제외하고 페어 지역에 떨어진 인플레이 타구의 타율을 의미한다. 보통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많거나 주력이 뛰어난 선수들의 BABIP가 높은 편이다. 타구가 강하면 수비를 뚫어내고 주력이 좋으면 내야 땅볼이 안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도 작용한다. 페어 지역에 아무리 좋은 타구를 날려도 상대 호수비에 걸리면 BABIP 수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BABIP가 평균에 얼마나 수렴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이정후의 BABIP는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다. 올해 BABIP가 0.239로 리그 하위 58위권(규정타석 평균 0.319)이다. 2021년 0.373, 지난해 0.339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수치가 하락했다. 모 구단의 데이터 분석 담당자는 "이정후는 각종 트래킹 데이터를 봤을 때 지표상 엄청나게 나빠진 게 없다. 그래서 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게 희한할 정도"라며 "운이 많이 없다는 거 말고는 해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이정후의 인플레이 타구 평균 속도는 리그 상위 3%에 해당한다. 그만큼 타구 질이 좋은데 BABIP가 낮으니 "불운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10일 잠실 LG 트윈스전에 앞서 이정후에 대해 "인플레이 타구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며 "아직 30경기밖에 하지 않았다. 30경기를 가지고 많은 지표를 비교한다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지금 뭔가 흡족해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건데 현장이나 본인이나 많은 인내가 필요할 거 같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이날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을 기록, 모처럼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정후는 '2022시즌 타격 폼'으로 운에 맞선다. 익숙했던 타격 폼으로 수정하면서 개인 성적이 조금씩 향상하고 있다. 지난 7일 이후 4경기 BABIP도 0.313으로 올랐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선수 입장이기 때문에 (바뀐 타격 폼으로) 계속하기에는 조급해지더라"며 "편안하게 치자고 생각하면서 그냥 의식에 몸을 맡겼는데 작년 폼으로 되돌아간 거 같다. 아직 시즌 초반이고 해야 할 경기가 더 많다"고 반등을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