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오승환(40)이 생각나는 경기였다. 삼성이 1점 차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고 역전패했다.
삼성은 27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방문 경기에서 3-5로 패했다. 팀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고 있던 좌완 이승현(21)이 9회 볼넷 2개에 홈런 한 방을 얻어맞으며 역전을 내줬다. 흔들린 제구와 수비의 판단이 아쉬웠던 경기였다.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원태인의 뒤를 이어 등판한 이승현은 적극적인 투구로 선두타자 윤동희를 상대, 포수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순조롭게 잡아냈다. 하지만 다음 타자 전준우를 상대로는 갑자기 소극적인 피칭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린 비 때문인지 한 방이 있는 타자를 의식해서인지 제구가 되지 않았다. 결국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진 잭 렉스와의 승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회 홈런을 한 방 때려냈던 강타자였기에 의식이 되는 건 당연했다. 포수의 바깥쪽 요구에도 공이 몸쪽으로 뻗어 가면서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렉스의 연이은 파울로 1-2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아냈지만, 공이 연달아 존을 크게 벗어 나가면서 또다시 볼넷을 허용했다.
안치홍과의 승부에선 변화구 폭투로 2루 주자의 3루 진루를 허용했다. 강민호가 블로킹으로 잘 막아냈지만, 전준우의 3루 진루까지는 예상하지 못해 송구가 늦었다. 이후에도 이승현의 제구는 가운데로 쏠렸다. 1루수 파울라인 선상으로 뻗어나가는 아찔한 파울 타구를 내주기도 했다. 6구째 직구도 포수가 요구한 바깥쪽이 아닌 가운데로 몰렸다.
이를 받아친 안치홍의 타구는 큰 바운드와 함께 3루수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때 병살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삼성 수비진의 조급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3루수 김호재의 공을 받은 2루수 김지찬이 1루로 송구했으나, 공이 원바운드로 연결돼 타자 주자의 출루를 허용했다. 두 야수 모두 불안정한 자세로 공을 던지다 보니 송구에 온전히 힘을 싣지 못했고, 결국 안치홍의 전력질주를 막지 못하면서 3루 주자 전준우의 득점을 허용했다.
동점을 허용한 이승현은 더 흔들렸다. 결국 유강남과의 승부에서 던진 슬라이더가 가운데로 몰리면서 끝내기 역전 2점 홈런을 맞았다. 이승현의 제구도 아쉬웠지만, 흔들린 이승현을 그대로 믿고 올 시즌 좌완투수를 상대로 강했던(타율 0.333) 유강남과 그대로 승부를 붙인 더그아웃의 패착도 한몫했다. 방송사 중계서 비친 삼성의 불펜엔 준비하는 투수가 아무도 없었다. 상대 롯데가 8명의 투수를 투입하며 필승의 의지를 다진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오승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박진만 감독은 지난 인터뷰에서 “상황과 상대 타선에 맞게 마무리 투수를 운용하겠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지난 16일 KT 위즈전에서 오승환을 8회에 올려 8구 만에 내린 것도 이와 같은 차원이었다. 오승환이 있었다면 흔들리는 이승현과 상대 매치업을 고려해 이닝을 쪼개 9회 마운드를 운용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오승환은 하루 차이로 1군에 등록되지 못해 불펜에 없었다.
오승환은 28일 1군에 복귀한다. 박진만 감독은 “2군에서 준비를 잘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올라오면 불펜진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바 있다. 멘털 회복 후 뒤늦게 올라온 오승환이 위기에 빠진 삼성의 불펜진을 구원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