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4강 성과는 비단 한국축구 미래들의 등장만은 아니었다. 명확한 전술적인 철학과 리더십까지 갖춘 김은중 감독의 등장 역시 한국축구엔 반가운 성과였다. 첫 메이저 대회부터 U-20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김은중 감독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렸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U-20 월드컵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김은중 감독은 잠시 숨을 고르면서도 늘 축구 현장과 가까이 있었다. 지도자로서 가야 할 다음 스텝을 어떻게 밟아야 할지 고심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이제는 자신도 방향성이 잡혔고, 서서히 현장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김은중 감독은 “어떤 분들은 성공했다고 하시지만, 성공은 아직 멀었다”고 단언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을 이어가겠단 의지의 표현이다.
U-20 월드컵 이후에도 늘 찾은 축구 현장
김은중호는 지난 6월 그야말로 ‘금의환향’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선 귀국 환영행사까지 마련됐고, 팬들도 찾아 김은중호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회 전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해 설움까지 겪어야 했던 김은중호엔 드라마 같은 반전이었다. 김은중 감독은 공항에서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으며 1년 6개월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귀국 직후 가족들과 짧게 휴식을 취한 그는 숨을 고르는 시간에도 늘 축구 현장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꼭 K리그 경기장을 직접 찾았고, 일본 축구 현장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최근 벌어지는 한·일 축구의 격차, 일본이 앞서가는 이유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일본 축구가 요즘 너무 잘하니까, 왜 더 잘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일본을 두 번 다녀왔다. J-리그도 몇 경기 현장에서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K리그 현장을 다녔던 김 감독은 박태하 기술위원장의 제안을 받고 이달부터 TSG 위원으로서 현장을 찾고 있다. 김은중 감독은 “9월 초 인천-포항전을 시작으로 TSG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실 그 전엔 K리그 현장을 찾는 것만으로 자칫 여러 구설에 오를 수 있었다. 불편하게 다니는 게 아니라 이제는 TSG 위원으로서 매주 경기장을 찾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K리그1과 K리그2 등 폭넓게 경기장을 찾으며 각 팀과 경기를 분석하고 있다. 휴식 기간에도 축구 현장을 꾸준히 찾은 건 감독으로서 계속 배워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김은중 감독은 “다시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대표팀 감독일 땐 선수를 선발하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선수를 집중적으로 봤다면, TSG 위원으로서는 전체적으로 다 보게 되기 때문에 공부가 된다. 두 팀이 경기하기 전에 일주일 간 어떻게 준비를 했고, 어떤 팀이 준비한 대로 잘 맞아떨어져서 승리하는지를 유심 있게 보게 된다. 선수가 아니라 팀을 중심으로 보게 되니까 경기를 새롭게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요즘 김 감독의 눈에 들어오는 팀은 광주FC와 대전하나시티즌, 두 승격팀이다. 이정효 감독이 이끄는 광주의 경기력은 이미 많은 호평을 받고 있고, 이민성 감독의 대전 역시 화끈한 공격 축구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김은중 감독이 TSG 위원으로서 인상적으로 평가하는 팀들의 경기력은, 향후 김 감독이 추구하게 될 경기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요즘엔 광주가 가장 이슈적인 팀이죠. 뛰어난 선수가 딱 있는 건 아닌데, 팀적으로 운동장에서 모든 선수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우리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운동장에 나가면 전쟁터이기 때문에, 살아있지 않으면 경기를 어떻게 준비했든 간에 무조건 지는 경기입니다. 광주 선수들은 매 경기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전도 그야말로 3골을 허용하더라도 4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적이고 화끈한 축구를 많이 보여주고 있죠. 순위를 떠나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감독 김은중' 제2막이 오른다, 중요한 건 철학·방향성
지도자로서 첫 무대에서 U-20 월드컵 4강 신화를 썼으니, 김은중 감독의 다음 행보에 관심과 기대가 쏠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미 새로운 감독을 물색하고 있는 K리그 구단이 있거나, 감독 거취가 불투명한 팀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던 이름이기도 했다. 김은중 감독도 “사실 2~3개 프로팀에서 감독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김은중 감독은 이 제안들은 정중하게 고사했다. 이유가 있었다. 김 감독은 “제안받은 팀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땐 명확하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갈지에 대해 정립이 안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난 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다음 스텝을 가야 할 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가 안 된 상태다 보니, 사실 제의를 받고도 시기적으로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정중하게 고사했다”고 돌아봤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그다.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팀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이 잡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명확한 조건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구단만 있다면, 곧 현장으로 복귀할 계획이 있다는 게 김은중 감독의 설명이다.
“그 팀의 철학과 방향성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프로니까 당연히 성적도 내야겠지만, 어느 정도 장기적으로 구단의 철학이 확고하고 방향성이 뚜렷한가도 봐야 될 것 같아요. 당장 1~2년만 보는 팀보다 4~5년을 내다보고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방향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팀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단 철학과 방향성이 잘 맞아떨어지고, 좋은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지 복귀할 생각은 있습니다. 선수 시절 때도 그랬지만, 명확하게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도전해야죠.”
명확한 철학과 방향성에 대해 그는 여러 사례를 예로 들었다. 예컨대 2부 팀의 경우 단순하게 승격만 바라는 구단인지, 아니면 승격하고 난 뒤에도 꾸준히 1부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구단인지가 중요하단 것이다. 김 감독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내실을 잘 다듬고 팀을 잘 만들어서, 1부리그로 승격 후 꾸준히 잔류하면서 그 다음엔 상위 스플릿(파이널 A)을 목표로 해야 하는 팀이어야 한다”며 “1부 팀의 경우 5년을 내다보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노리겠다는 구단의 철학이 있거나, 매년 잔류만이 목표가 아니라 2~3년 후엔 파이널A, 이후엔 ACL 진출 등 이런 장기적인 철학과 방향성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감독은 “감독은 마법사가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구단의 철학과 방향성도 없이 감독만 선임한다고 모든 게 좋아질 수는 없다는 뜻이자, 자신이 앞선 조건을 가장 강조하는 배경이다. 그는 “감독 혼자 좋은 아이디어, 좋은 전술을 짠다고 해도 그게 다 이뤄질 순 없다. 감독의 역량이 크기는 하지만, 감독 혼자 팀을 다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스태프, 구단의 지원이 잘 맞아떨어져야 팀이 발전하고 좋은 방향성으로 갈 수 있다. 구단의 단장·대표이사님들이 장기적으로 좋은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 신중하게 결정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공한 감독이 아니라, 이제 첫 성과를 냈을 뿐”
제2막을 올릴 준비 중인 김은중 감독은 추구하는 전술과 축구 철학도 명확하다. 지난 U-20 월드컵에서 그랬던 것처럼 빠른 트랜지션을 바탕으로 한 강한 전방 압박, 그리고 빠른 공격이다. 이번 시즌 호평을 받고 있는 광주 축구처럼, 또 자신이 U-20 월드컵 내내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것처럼 선수들이 ‘살아있는’ 축구를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은중 감독은 “광주의 축구는 뭔가가 지루하지가 않다. 선수들이 살아있고, 진짜 다이내믹하고 눈을 뗄 수 없는 집중력을 생기게끔 한다. 나 역시도 지난 U-20 월드컵 대표팀을 맡았을 때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빠른 트랜지션과 높은 위치에서 빠르고 강한 압박, 그리고 빨리 공을 탈취해서 재공격하는 게 기본 틀”이라고 설명했다. 그 틀 안에는 비단 성적뿐만 아니라 팬들을 위한 재미있는 축구를 선보이고 싶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프로팀에 가서도 제가 기본적으로 하려는 축구는 선수들이 살아있고 보는 데 지루하지 않은, 다이내믹한 축구를 기본 바탕으로 둘 겁니다. 물론 선수 구성이 안 된다면 능동적으로 팀에 맞게끔 변화를 줘야겠죠. 성적을 내는 것도 당연히 기본이겠지만, 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전이 순위는 약간 밑에 있더라도 재미있는 축구를 해주니 그만큼 팬들의 관심도 엄청 커지는 것처럼요. 순위뿐만 아니라 팬들을 위한 축구를 하는 것도 좋게 평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김은중 감독은 “처음 감독을 하면서 성과를 낸 것이지, 성공과는 아직은 거리가 먼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사령탑으로 나선 첫 대회에서 U-20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이것만으로 안주하진 않겠다는 뜻이다. 앞서 선수들에게 늘 강조했던 도전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사실 어떤 분들은 성공했다고 표현하시지만,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축구는 완벽한 게 없다.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랐지만, 대회가 끝나고도 ‘이렇게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았던 장면들도 있다”며 “처음 감독을 하면서 성과를 낸 것일 뿐 성공한 지도자라고 하기엔 아직은 할 일도 많고, 해야 될 것도 너무 많다. 이제 초보 감독이기 때문에, 도전을 계속 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지도자로서 오랜 세월이 흘렀을 때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대신 이 과정에서 그는 명확한 목표를 품었다. 한국축구가 세계적인 수준에 닿을 수 있도록 지도자로서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U-20 월드컵에서 그랬듯, 앞으로 많은 제자가 더 큰 무대로 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의지도 덧붙였다. 어느덧 한국축구의 중심에 선 유망한 지도자가 품고 있는 포부다. 앞으로 '감독 김은중'의 행보에 많은 기대가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한국축구에 기여할 수 있고, 시스템적으로 선수들이 좋은 지도를 받아 성장하고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지도를 받을 수 있게 조금씩이라도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선배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한국축구가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적인 무대에 근접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제가 지도자 생활을 거의 마무리할 때쯤엔 제가 가르친 많은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뛰는 걸 보면서 뿌듯했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제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느냐에 따라, 제가 성공한 감독이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그때쯤이면 나올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