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기업들의 스포츠 후원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 1위 삼성이 스포츠 후원을 줄이는 등 대기업들의 종목 쏠림으로 인해 하계 스포츠가 동계 스포츠보다 썰렁하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회장사 맡지 않는 삼성, 공식 후원사도 발 빼
9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예년과 달리 삼성의 흔적을 찾는 게 힘들었다. 삼성전자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발을 뺐다. 이에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삼성의 광고 간판을 이번 대회에서는 볼 수 없었다.
반면 삼성은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2028년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올림픽 공식후원 계약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림픽 공식 후원사 연장계약 행사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높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삼성은 2028년 LA 올림픽까지 무선·컴퓨팅 분야 공식 후원사로 참가할 예정이다.
삼성은 SK, 현대차, 롯데 등과는 달리 회장사를 맡은 스포츠 종목이 없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에는 레슬링협회의 회장사를 맡았지만 후원에서 발을 뺀 지 오래다. 삼성이 발을 빼자 레슬링의 ‘효자종목’ 위상도 사라졌다. 레슬링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레슬링의 아시아게임 노골드는 13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 일가가 스포츠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마지막이었다. 이건희 선대 회장과 이재용 회장, 홍라희 전 리움 관장 등이 런던으로 건너가 태극전사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삼성은 스포츠 후원과 마케팅에 더 이상 적극적이지 않다. 박근혜 정부 시절 K스포츠와 미르 재단에 출연금을 냈던 게 발단이 되면서 옥고를 치렀기 때문에 후원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삼성의 간판을 달고 있는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 국내 스포츠팀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스포츠 후원과 관련해 이재용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라며 “제일기획에서 삼성 스포츠단을 맡으면서 후원과 투자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SK 펜싱·핸드볼, 현대차 양궁 회장사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대기업 총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만 모습을 드러냈다. 정의선 회장은 대회 3관왕을 차지한 임시현의 금메달을 직접 목에 걸어주며 흐뭇한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정의선 회장이 대한양궁협회 수장을 맡는 등 현대차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는 양궁은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여자 단체전에서 7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고, 13년 만에 남녀 단체전 동반 금메달을 수확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2005년부터 19년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30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 일정 등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SK는 펜싱과 핸드볼 등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SK텔레콤이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고, 최태원 회장은 대한핸드볼협회의 수장이다.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SK의 후원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 6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펜싱 최다 금메달(52개) 국가로 올라서기도 했다.
LG와 롯데는 동계 스포츠 종목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롯데는 스키 선수 출신 신동빈 회장의 애정으로 비인기 종목인 스키에 아낌없는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는 대한스키협회의 회장사이기도 하다.
LG도 비인기 스포츠 꿈나무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LG는 남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2026년까지 공식 후원하는 등 아이스하키 꿈나무 발굴 및 양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또 LG는 8년간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아시안게임은 중국에서 열려 기업들의 관심도가 줄어든 측면도 없지 않다”며 “대기업들이 미중 패권 싸움 등의 영향으로 중국 내 투자를 줄이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