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이 되긴 했어요. 시나리오 상으로만 봤을 때도 한수강이라는 인물이 너무 기괴하고 이상한 짓을 하더라고요. 그래도 선택해봤죠. 모험가 기질이 있거든요 제가.”
영화 ‘용감한 시민’으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배우 이준영은 최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용감한 시민’은 불의는 못 본 척, 성질은 없는 척, 주먹은 약한 척 먹고 살기 위해 조용히 살아 온 기간제 교사 소시민과 법도 경찰도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안하무인 절대권력 한수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소시민(신혜선)의 통쾌한 활약을 그린 이 작품에서 이준영은 악랄하기 그지없는 빌런 한수강을 연기했다.
누군가는 이준영의 눈빛에서 섬뜩함을 느낀다지만, ‘용감한 시민’에서 합을 맞춘 신혜선을 비롯해 주변인들이 말하는 이준영은 ‘선함’ 그 자체. 이준영은 실제 노인 등 약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한수강을 연기하며 힘들 때가 많았다고 했다.
“한수강을 연기하면서 요즘 세상이 너무 흉흉하고 무서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수강이 사람에게 비닐봉지를 씌우는 장면이 있는데요, 제가 스스로 그걸 해보니까 정말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요즘은 이것보다 심한 짓을 하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섬뜩했어요.”
보통 배우들은 악인 연기를 맡더라도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통. 하지만 이준영이 바라본 한수강은 “공감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감독님하고도 그런 여지를 절대 주지 말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무조건 재미로 접근했어요. 놀이처럼. 상종하기 싫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본적으로 ‘용감한 시민’에 임하는 저의 태도는 신혜선이 연기한 소시민의 활약이 잘보일 수 있게 하는 헬퍼가 되자는 것이었어요.”
특히 괴로웠던 건 손숙을 괴롭히는 장면이었다. 친할머니가 편찮으셨다는 이준영은 그 장면을 찍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그때 그런 이준영을 위로해준 건 다름아닌 손숙이었다.
이준영은 “선배님이 내게 와서 ‘힘들지 않느냐’고 먼저 물어주시더라”며 “선생님을 안고 ‘죄송하다’며 울었다. 선생님과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더라”고 털어놨다.
평소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이준영은 이번 작품을 찍으며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기대는 법을 배웠다. 한수강이라는 악랄한 인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힘들었으니 다음 번엔 악역 선택을 피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준영에게선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으로부터 빨리 빠져나오는 것 또한 배우의 의무라고 생각한단다.
“그냥 제가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가해하는 그런 인물을 연기하려면 마음이 많이 강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용감한 시민’ 속 소시민을 보고 부디 많은 분들이 통쾌함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