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은 지난 요르단전에서 자존심을 잔뜩 구겼다. 공격 포인트 침묵뿐만 아니라 드리블·크로스 성공률 등이 직전 경기보다 눈에 띄게 떨어질 만큼 아쉬운 경기력에 그쳤기 때문이다. 바레인과 첫 경기에서 멀티골 맹활약을 펼치며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의 크기는 더욱 컸다.
실제 이강인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1, 2차전 기록엔 차이가 컸다. 1차전 바레인전에선 3개의 슈팅을 기록하고도 멀티골을 넣었지만, 요르단전에선 오히려 1개 더 많이 기록하고도 침묵했다. 드리블 성공률은 67%에서 38%로, 크로스 성공률도 50%에서 25%로 각각 떨어졌다. 바레인전은 9.7점, 요르단전은 6.8점이었던 소파스코어 평점의 차이는 이강인의 극과 극 경기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지표였다.
세계적인 구단인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뛰고 있는 선수인 데다, 대회 첫 경기에서 멀티골까지 넣었으니 경기 내내 상대의 집요한 견제가 이어진 탓이 컸다. 실제 이강인이 공을 잡으면 2~3명이 단숨에 달려들어 강력하게 압박했다. 더 큰 문제는 이강인의 부담을 덜어줄 만한 동료 선수나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의 전술적인 변화 등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강인은 무리하게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다 소유권을 빼앗기는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자주 허벅지 등을 만지는 등 컨디션도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25일 오후 8시 30분(한국시간)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말레이시아와 대회 조별리그 E조 최종전. 지난 요르단전에서 아쉬움을 삼켰던 이강인의 활약 여부엔 그래서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이 쏠린다. 이강인 스스로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벼르고 있을 경기이기도 하다.
물론 말레이시아와의 객관적인 전력 차 등을 고려하면 클린스만 감독도 최정예를 가동하기보다 로테이션을 가동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이른바 ‘경고 트러블’에 걸린 선수들은 말레이시아전에서 추가 경고를 받으면 16강전에 출전할 수 없어 경고 관리가 필요하다. 조 3위로 떨어지더라도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다.
그러나 이강인만큼은 경고 트러블에서 자유롭다. 아직 옐로카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16강전이 5~6일 뒤에 열린다는 점에서 체력적인 부담도 적다. 그동안 클린스만 감독이 공격진 일부에 로테이션을 가동하더라도, 이강인만큼은 적잖은 출전 시간을 줄 가능성이 커 보이는 배경이다. 상대와 전력 차를 떠나 경기 감각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강인이 출전하면 앞선 요르단전이 그랬듯 상대의 집중 견제와 또 맞설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견제에 시달렸던 이강인이 똑같이 당할 리는 없다. 이강인과 말레이시아 선수들 간 기량 차이도 적지 않다. 직전 경기의 아쉬움을 털어낼 한수 위의 플레이를 수차례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자연스레 토너먼트를 앞두고 이강인의 기세를 한껏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침 김판곤 전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이끄는 말레이시아는 이미 요르단·바레인에 모두 져 탈락이 확정된 조 최약체다. 한국이 23위, 말레이시아는 130위인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의 격차 역시 두 팀의 전력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이적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선수단 전체 시장가치는 한국이 1억 9300만 유로(약 2803억원), 말레이시아는 678만 유로(약 99억원)로 28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강인의 시장가치(2200만 유로·약 320억원)는 말레이시아 선수단 전체를 더한 것의 3배 이상일 정도다. 굳이 이강인 등 최정예를 내세울 필요는 없겠지만, 경고 변수나 체력 부담이 없는 선에서 적절한 출전 시간은 오히려 경기력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상대다.
클린스만호는 이번 말레이시아전을 끝으로 대회 조별리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말레이시아전 스코어, 그리고 같은 시각 열리는 요르단-바레인전 결과에 따라 최종 순위가 결정된다. E조 1위로 통과하면 D조 2위인 일본, 2위로 통과하면 F조 1위(사우디아라비아 또는 태국)와 각각 겨룬다. 16강은 물론 이후 대진에서도 어느 팀이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토너먼트에 나서야 한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은 그래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