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회의 중 두 번의 회의는 의미가 없었다. 단 한 번의 회의에서 황선홍(56)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돌연 1순위에 올랐고,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국가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아무리 임시 감독이라지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가 과연 있긴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 과정이다.
정해성(66) 신임 위원장 체제의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가 꾸려진 건 지난 20일이었다. 어떠한 배경으로 정해성 위원장이 선임이 됐는지,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 사태로 거센 비판을 받는 와중에도 협회 내부 인사가 전력강화위원장 중책을 맡게 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정해성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21일 열린 전력강화위 첫 회의부터 삐걱였다. 당시 전력강화위는 3월부터 정식 감독 체제로 대표팀을 운영하고, K리그 현직 감독들을 비롯한 국내 감독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리겠다는 기준을 잡았다. 국내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계획부터 개막을 앞둔 K리그 현직 감독을 빼올 수도 있다는 구상 등에 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 HD 서포터스는 트럭시위에 근조화환까지 보내는 등 항의를 이어갔다.
사흘 뒤인 24일, 브리핑도 없애고 시작한 전력강화위의 두 번째 회의. 이날 전력강화위는 첫 회의에서 잡았던 기준을 모두 틀었다. 사실상 1차 회의는 ‘없던 일’이 된 셈이다. 정 위원장은 “후보자 논의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음에도 특정 지도자들이 언급되면서 언론과 축구팬들의 부정적 반응이 고조됐다. 방향을 바꾸는 게 맞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결국 전력강화위는 두 번째 회의에서 ‘3월 임시 감독 체제’로 기준을 다시 잡았다.
구체적으로 후보가 거론된 건 그 이후라는 게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A매치 2경기를 위해 K리그 현직 감독을 선임하는 건 무리다, 주어진 시간을 생각할 때 외국인 지도자는 맞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 소속이거나 경험은 많지만 팀을 맡지는 않고 있는 지도자가 맡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이후 전력강화위원들이 각자 의견들을 냈다. 최종 후보에 거론된 건 3명이었다.
후보에 오른 3명을 두고 치열하게 검증하고 비교하는 절차는 사실상 없었다. 정 위원장은 “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감독이 황선홍 감독이었다”고 했다. 지난 첫 회의는 의미가 없던 만큼, 사실상 두 번째 회의가 진행된 날 하루 새 황선홍 감독의 선임으로 가닥까지 잡힌 셈이다.
정해성 위원장은 다음 날 오후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 감독직을 제안했다. 황 감독이 하루 뒤 고심 끝에 수락하면서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임시 사령탑 체제는 빠르게 확정됐다. 27일 열린 세 번째 회의 역시 의미가 없었다. 대한축구협회는 “결과가 나오면 브리핑 예정”이라며 여전히 전력강화위에서 치열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처럼 포장했다. 실제 저녁 늦게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미 내부적으로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로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실제 3차 회의는 전력강화위원들에게 결과를 통보하는 정도에 그쳤다. 정 위원장은 “1순위 후보자(황선홍 감독)의 임시 감독직 수락 소식을 전했다”고 했다. 브리핑 개최 여부조차 미정이라던 대한축구협회도 3차 회의가 시작된 지 40분 만에 브리핑 개최 소식을 알렸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전력강화위 회의가 끝나면 약 2시간 이후 진행할 것으로 예고됐던 브리핑은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됐다. 이마저도 미디어의 이동 시간을 고려해 30분 늦춰진 일정이었다. 사실상 3차 회의의 의미가 없었던 셈이다.
정리하면 정해성 위원장 체제의 전력강화위는 출범 이후 세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1차 회의 때 세운 기준은 아예 무너졌으니 아무 의미가 없는 회의였다. 3차 회의마저 이미 결론이 나온 내용을 위원들에게 통보하고 빠르게 브리핑이 진행됐다. 사실상 1, 3차 회의는 이번 임시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지난 24일, 2차 회의 단 하루 새 황선홍 감독의 선임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아무리 임시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황선홍 감독을 선임한 이같은 과정은 전력강화위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해성 위원장의 브리핑 내용이 실제 전력강화위 회의에서 나온 내용과 다르다는 설이 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뜩이나 클린스만의 선임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는 의혹마저 불거진 상황에서, 또다시 감독 선임 절차에 대한 의문이 남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둔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을 겸임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건, 전력강화위가 그만큼 심도 있게 논의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파리 올림픽과 준비 과정에서 A대표팀을 맡는 게 무리가 없는지 다각도로 검토했다”는 게 정해성 위원장의 설명이지만, 하루 새 황선홍 감독이 내부적으로 1순위에 오르고 시간에 쫓기기라도 하듯 선임이 이뤄진 과정 속 얼마나 신중하게 논의가 오갔을지는 미지수다.
축구계 안팎에서 공통적으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실제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임시 지휘봉을 잡으면서 같은 기간 올림픽대표팀은 감독도 없이 최종예선 전 마지막 평가전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해야 한다. 황 감독이 A대표팀 임시 감독 역할을 맡고 나면, 올림픽대표팀은 아시아에 단 3장만 주어진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위한 험난한 여정을 곧바로 시작한다. 올림픽 준비에만 집중해도 모자란 시기에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임시 감독이라는 부담을 떠안게 된 상황은, 전력강화위가 신중하게 논의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당연히 피했을 시나리오였다.
“만약 결과가 안 좋으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정해성 ‘위원장’의 발언은 팬들 사이에선 조롱이 대상이 됐다. 올림픽 진출 실패 등 최악의 상황이 오면, 황 감독에게 A대표팀 감독을 겸임시킨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권한이 없는 만큼 직을 걸고 책임을 운운할 만한 자리가 애초에 아닌 데다, 올림픽 진출 실패가 가져오는 한국축구의 피해를 고려하면 오히려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감독 선임을 주도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사퇴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불명예 교체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번 황선홍 임시 감독 선임 과정을 통해 이번 전력강화위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정해성 위원장은 늦어도 5월 초까지는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과연 제대로 된 감독을 선임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부터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클린스만 사태를 겪고도 달라질 거란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