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황소처럼 되어보겠다고 몸을 부풀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난 그냥 개구리처럼 던지려고 했다."
임찬규(32·LG 트윈스)에겐 160㎞/h 강속구도, 거짓말처럼 꺾이는 마구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강했다.
임찬규는 1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스페셜 매치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4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실점은 있었지만, KBO리그 후배였던 김하성에게 내준 투런포가 유일했다.
임찬규는 최고 140㎞/h대 중반, 평균적으로 140㎞/h 전후를 던지는 제구파 투수다. KBO리그에서도 힘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대신 느린 체인지업과 제구로 살아남았다. 지난해 14승으로 국내 투수 다승 1위를 기록한 비결도 제구였다.
MLB 기준으론 슬라이더보다 느린 직구였지만, 이날은 그가 샌디에이고를 넘어섰다. 임찬규는 1회 샌디에이고가 자랑하는 올스타 1~3번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솎아냈다. 1번 타자 잰더 보가츠, 2번 타자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3번 타자 제이크 크로넨워스가 모두 그의 결정구 체인지업에 속절없이 물러났다.
2회 매니 마차도의 2루타, 김하성의 투런 홈런으로 첫 실점은 있었으나 호투는 계속됐다. 임찬규는 주릭슨 프로파를 뜬공으로 잡았고, 에구이 로사리오와 카일 히가시오카 상대로는 연속 3구 삼진을 이끌었다. 5회 말엔 샌디에이고가 자랑하는 최고 유망주이자 올해 주전 중견수를 예약한 잭슨 메릴에게도 탈삼진을 더했다. 5이닝 동안 총 투구 수 65구. 탈삼진은 많고 투구 수는 경제적인 최고의 피칭이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임찬규에게 호투 비결을 묻자 "내 체인지업으로 미국 타자를 상대해보고 싶었다. 결과가 좋아 기분 좋다"며 "최고 타자들인 만큼 실투를 던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체인지업을 던졌다. 타자들이 내 공이 생소해 잘 못친 것 같다"고 했다. 김하성에게 맞은 홈런에 대해서도 "실투였다. MLB 타자들에게는 역시 실투를 조심해야 한다고 새삼 다시 느꼈다. 그 이후 더 정교하게 핀포인트로 제구해 던지려고 했다.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임찬규는 "개구리가 황소처럼 되어보겠다고 몸을 부풀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난 그냥 개구리처럼 던지려고 했다"고 했다. 공이 빠르지 않은 자신이 강속구 투수들처럼 덤벼봐야 좋은 결과를 못 얻는다는 뜻이다.
한편 타선에선 지난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오지환의 홈런으로 존재감을 남겼다. 오지환은 2회 말 샌디에이고 선발 딜런 시즈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쳤다. 지난 2022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오른 시즈는 이날도 최고 구속 157㎞/h를 찍었고, 막강한 변화구로 1회부터 LG 타자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몰린 실투를 오지환이 놓치지 않으면서 샌디에이고 이적 후 첫 등판이던 이날 첫 실점을 기록했다.
오지환은 "상대 선발이 사이영 투표 2위 선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구위가 좋더라. 직구 타이밍에서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며 "슬라이더를 보니 무브먼트가 좋더라. 최대한 앞에서 빨리 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배트에 잘 맞은 것 같다"고 전했다.
2009년 데뷔한 베테랑이지만, MLB 구단과 맞대결은 그에게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오지환은 "볼거리도 많고 느낀 점도 많은 경기였다. 직접 MLB 투수를 상대할 수 있어 기뻤다. 확실히 구위가 좋았고 우리 선수들과 달랐다"고 떠올렸다.
오지환은 "경기 시작 전 선수들에게 100% 이기는 경기를 하자고 얘기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플레이나 작전을 다 체크하고 이미지에 그리며 경기에 나섰다"며 "어린 선수들이 MLB 선수들과 경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좋다. 선수들의 목표 의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팀 리더다운 기대감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