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빈(25·두산 베어스)이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와 다시 만났다. 1년 만의 재대결서 승자는 오타니가 아닌 곽빈이었다.
곽빈은 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MLB) 월드 투어 서울 시리즈에 선발 등판해 2이닝 동안 1피안타 2볼넷 2탈삼진 1실점(비자책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최고 구속은 155㎞/h가 찍혔다.
맡은 이닝은 길지 않았지만 부담이 작지 않았다. 1회 오타니가 상대해야 할 다저스 상위 타선은 무키 베츠, 오타니 쇼헤이, 프레디 프리먼으로 모두 MLB 최우수선수(MVP) 수상자였다. 4번 타자 윌 스미스, 5번 타자 맥스 먼시 등 뒤따르는 이들도 모두 20홈런 이상을 기록해 본 강타자다.
그중 으뜸은 단연 오타니였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MVP를 포함해 최근 3년 연속 MVP 2위 이상에 오른 그는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팀을 전승 우승으로 이끌고 대회 MVP를 탔다.
곽빈 역시 당시 오타니를 상대했던 투수 중 한 명이었다. 한일전에서 구원 등판했던 곽빈은 당시 오타니를 만났고, 그를 막는 대신 2루타를 허용하고 흔들렸다. 첫 성인 국가대표 무대였던 WBC가 곽빈에겐 좋은 기억만으로 남기 어려웠다.
곽빈은 오타니와 다시 마주해보길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 14일 시범경기 등판을 마치고 팀 코리아행을 준비하던 곽빈은 "선수들에게 누구를 상대해보고 싶냐고 물으면 다들 다저스를 선택하지 않겠나"라며 17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 대신 18일 다저스전 등판을 희망했다. 실제로 18일 경기에도 '당첨'됐다.
곽빈은 "선수들 모두 오타니를 한 번쯤은 상대해보고 싶을 거 같다. 워낙 대형 선수고, 야구 선수라면 다 꿈꿔보는 상대"라고 했다. 그는 "그때 이후 (재대결은) 없을 줄 알았다"고 웃더니 "이번 친선 경기가 잡힌 후에 계속 뽑히길 바랐다"고 떠올렸다.
지난해 WBC 출전 후 하체 활용 등에서 일본 투수들에게 자극을 받았던 곽빈은 이번 친선경기도 좋은 기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큰 도움이 될 거로 본다. 그렇게 많이 던지지 않더라도 정상급 선수들과 승부한다는 데에서 자신감도 얻을 것 같다"고 전했다. 당시 곽빈에게 긴장해서 힘이 들어갈 것 같냐고 묻자 그는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 MLB 선수들을 못 이긴다. 전력으로 해야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오타니 상대로는 홈이라 편한 것도 없다. 너무 잘하는 선수라 부담이다. 맞아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재대결의 승자는 뜻밖에도 곽빈이었다. 1회 선두 타자 베츠에게 볼넷을 내준 곽빈은 주자를 두고 오타니와 마주했다. 그런데 오타니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전날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마틴 후라도에게 삼진만 두 개를 당하고 물러났던 오타니는 이날도 곽빈에게 좀처럼 정타를 때리지 못했다. 첫 2구가 모두 파울이었고, 3구째는 볼이 됐으나 4구째도 정타를 때리지 못했다. 결과는 3루수 방면 파울 플라이.
오타니를 넘었다고 끝은 아니었다. 곽빈은 후속 타자 프리먼을 잡았지만, 4번 타자 스미스에게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다. 이어 5번 타자 먼시에게 다소 약한 타구를 유도했지만, 아웃을 잡진 못했다. 타구가 절묘하게 내야와 외야 사이로 떨어졌고, 이는 3루 주자 베츠를 불러들이는 적시타가 됐다.
그래도 추가로 실점하지 않았다.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을 이끈 곽빈은 2회 보다 깔끔한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지난해 신인왕 투표에 이름을 올렸던 제임스 아웃맨을 2루수 땅볼로 돌려세웠고, 베테랑 제이슨 헤이워드도 루킹 삼진으로 돌려보냈다. 마지막 타자 2루수 개빈 럭스 역시 좌익수 뜬공.
총 41구를 던진 곽빈은 임무를 완수하고 3회 마운드를 왼손 이의리에게 넘겼다. 2이닝치고 투구 수가 적지 않았다. 스트라이크도 25구로 많진 않았다. 하지만 오타니와 만남에서 설욕에 성공했고, 다저스 상위타선을 상대로 실점도 최소화했다. 곽빈 스스로 만족해도 좋았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