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 3점포에 이은 예상치 못한 헤드샷 퇴장. 생애 처음으로 겪은 불의의 결과에 에이스는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풀 죽은 모습으로 고개 숙인 채 더그아웃에 앉아있던 그를 보며 감독과 베테랑 선수는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정 어린 짖궂은 농담으로 그를 달래며 그가 이 위기를 극복하길 바랬다.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 피 에이스' 원태인에게 지난 1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은 최악이었다.
이날 선발 등판한 원태인은 선두타자 연속 안타로 선제 실점한 뒤, 볼넷에 이어 김재환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며 크게 흔들렸다. 이후 양석환을 내야 뜬공으로 잘 돌려세웠지만, 강승호와의 승부에서 던진 직구가 손에서 빠지면서 헤드샷으로 연결, 원태인은 곧바로 퇴장 명령을 받았다. ⅔이닝 조기 강판, 개인 선발 최소 이닝이었다.
뜻하지 않은 퇴장에 원태인은 풀 죽은 상태로 더그아웃 벤치에 앉았다. 하지만 선수가, 그것도 팀의 에이스가 침울하게 있다면 팀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에 감독과 그의 파트너 포수가 나섰다. 평소처럼, 유쾌하게 이겨내길 바라며 장난을 쳤다.
감독은 곧바로 원태인에게 다가갔다. 한껏 고개 숙이고 있던 그에게 박진만 삼성 감독은 "빨리 밥값해라, 네가 해야 할 거 해야지"하면서 동료들을 힘껏 응원하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조금 살아나 열심히 팀원들을 동료했다는 후문이다.
평소에도 장난기 많았던 강민호도 먼저 다가갔다. 강민호는 원태인의 데뷔 시절부터 그가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기까지 그의 안방을 든든히 지켜줬던 포수. 강민호는 그에게 "뭐 어쩌겠냐. 넌 전반기에 너무 잘된 거다. 이제 좀 내려놔"라며 농담을 건넸다.
감독과 베테랑 포수의 장난에 조금 풀어진 걸까. 이튿날(14일) 만난 원태인의 입가엔 약간의 미소가 띄었다. 전날 적은 투구수에 불펜 피칭까지 소화한 그는 정대현 투수코치의 조언을 받으며 다소 해답을 찾은 듯한 후련한 미소를 보였다.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빠르게 회복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원태인을 다음주 주중 경기에 일찍 준비시키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어제 원태인의 투구수가 너무 적어서 다음주 주중 경기에 선발로 내보낼 계획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원래 로테이션대로라면 원태인은 19일 금요일 대구 롯데 자이언츠전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16~18일 화~목 경기인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 마운드에 오를 확률이 높아졌다.
본격적인 1위 싸움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때까지 원태인이 '멘붕 상태'에서 잘 벗어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