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슬로 스타터', KT의 후반기 마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만 우규민(39)은 방심하지 않는다. 프로 21년차.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기도 하지만, 지난 20년간 겪었던 '암흑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우규민은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암흑기를 겪다보니 자연스레 방심을 경계하게 되더라. 지금의 상승세도 절대 안심해선 안된다"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우규민은 후반기 4경기에서 4⅔이닝을 소화, 2승 무패 무실점으로 탄탄한 투구를 펼쳤다. KT가 후반기에 7승 2패 승률 0.778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불펜에서 베테랑 우규민이 잘 버텨준 덕분에 뒷문을 지키고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규민도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다. 4월까지 8경기 평균자책점 8.10(6과 3분의 2이닝 6자책)으로 다소 아쉬웠다. 2군에도 두 차례 다녀왔다. 지난 시즌 직후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한 새 팀에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를 너무 의식한 탓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휴식차 다녀온 2군에서 돌아온 뒤엔 펄펄 날았다. 5월 이후 나선 1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95(19이닝 2자책)를 기록했다. 삼진을 17개 잡아내는 동안 볼넷은 단 한 개밖에 없었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도 0.84로 준수했다. 그는 "내 (공격적인) 스타일대로 던지기 시작하니 결과도 좋고 후회도 안 되더라. 이전까진 ABS 상관없이 던졌다면, 이제는 그 ABS 스트라이크 존을 의식하면서 던지기 시작하니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라고 말했다.
우규민의 호투와 함께 KT도 날개를 달았다. -12까지 벌어졌던 승패 마진도 23일 현재 45승 47패 2무(승률 0.489), '-2'까지 좁혔다. 포스트시즌 진출 마지노선인 공동 5위(NC 다이노스·SSG 랜더스)와도 1경기 차로 역전이 가능한 위치다. 우규민은 "KT가 후반기에 잘한다는 걸 알았지만 직접 경험하니까 신기하다"라면서도 "방심하면 안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팀을 위해서라도, 20년간 쉼없이 달려온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규민은 한국시리즈(KS) 행이 간절하다. 2003년 프로에 데뷔한 우규민은 KS 무대를 밟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 동갑내기 포수 강민호(삼성)과 함께 KS 무대를 밟지 못한 선수로 항상 꼽히기도 한다. 우규민은 "프로야구에서 20년 이상 뛴 선수들 아닌가. 한 번 쯤은 경험해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꼭 경험하고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우규민은 현재 통산 84승-107홀드-90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100승-100홀드-100세이브라는 KBO리그 전대미문의 기록도 가능한 기록이다. 시즌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규민은 이 기록에 대한 욕심을 조심스럽게 내비친 바 있다. 이에 그는 "딱히 목표를 두고 뛰는 건 아니지만, 잘 준비하고 오래 야구하면 충분히 세울 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욕심은 여전히 있다"라며 웃었다.
그는 이번 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 신분을 얻는다. FA 계약의 욕심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2차 드래프트에서 나를 뽑아준) KT라는 팀에 너무 감사하다. 내 (커리어) 마지막 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면서 "지금은 최선을 다해 이 팀에 도움이 되는 선배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라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