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철(사진=NEW, 수필름 제공)
“앞으로 제가 배우를 하면서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거 같은 날들이었어요.”
29세의 나이 차와 33년의 경력 차. 계급장을 떼고 대선배 이혜영과 뜨거운 감정을 부딪친 김성철이 영화 ‘파과’를 두고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파과’는 구병모 작가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악인을 처단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영화다. 김성철이 투우 역으로 분했다.
개봉에 맞춰 일간스포츠와 만난 김성철은 “60대와 30대 킬러의 만남도 매력적인데 존경하는 이혜영 선생님이 조각 역을 하신다니 ‘수학의 정석’같은 느낌이라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그는 실제로 만난 이혜영이 의상을 입은 첫 모습을 보고선 대선배와 호흡을 맞춘다는 걱정보다 ‘느낌 좋다’는 기대감과 함께 정말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단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안되는 걸 되게 한 거다 보니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혜영 선생님이 액션을 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고, 제가 감히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시행착오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컷! 수고하셨습니다’에서 모든 걸 내려놓는 듯한 감정이 크게 왔어요.”
김성철은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대결신 촬영을 마치고 이혜영, 민규동 감독과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고백했다. 김성철은 “전 신체 템포가 남들보다 좀 빠른 편인데 선생님 체력이 많이 저하된 상황에서 찍다 보니 컨디션과 속도를 신경 쓰며 찍었다”며 “살살한다고 했는데 이혜영 선생님이 ‘힘 좀 빼’라고 하셨다. 촬영하다 보면 감정이 올라와 힘이 들어가는 건데 고통으로 느낄 수 있겠구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애틋해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이혜영’이 아닌, 실제로 겪은 이혜영과의 호흡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빗댔다. 김성철은 “제가 이전 세대를 그리워하는 로망이 있다보니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재밌었다”면서 “작품 안에선 조각과 투우는 같은 세대라고 생각했기에 연기할 때도 전혀 부담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 아름다운 성철이 왔어?’라고 인사 건네실 때마다 편하고 좋았고, 워낙 소녀 같은 분이라서 대선배님과 작업한다는 느낌이 아녔어요. (웃음).” 배우 김성철(사진=NEW, 수필름 제공) 화기애애했던 두 사람은 스크린 안에선 애증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관계성으로 치열히 얽힌다. 조각에게 덤벼드는 투우는 원작에서도 감정이 상세히 묘사되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새 해석으로 빚었다. 김성철은 “소설 속 이면을 상상해보면서 시나리오와 섞어 캐릭터를 만들었다”며 “분노와 그리움의 사이에서 표현을 고민했다. 슬프거나 화난 걸로만 보이지 않도록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설명했다.
영화뿐 아니라, OTT 드라마와 뮤지컬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활동하고 있는 그는 최근 악에 받친 강렬한 배역을 많이 맡아왔다. 김성철은 “‘지옥’의 캐릭터가 제 안에 남아있을 때 비슷한 결을 하고 싶어서 ‘노 웨이 아웃’을 택했고, 그 사이에 ‘파과’ 출연 결정을 했다”며 “1년 사이에 찍은 건데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캐릭터로 이어가고자 했다”고 떠올렸다.
“연기할 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보단 인물들이 가진 결핍이 세서 표현하기 재밌어요. 배우를 하며 좋은 건 제 들끓는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단 거거든요. 기회가 많이 없는 캐릭터라 만날 수 있을 때 해보고자 한 건데 이젠 선하고 러블리한 작품 해보고 싶어요.”
어느덧 데뷔 11년 차, 쌓인 경험만큼 책임감도 늘었다. 김성철은 “이전까진 좋은 모습 보여드렸으면 만족했는데 이젠 작품이 잘됐으면 좋겠다”며 “제 장면을 잘 해내는 건 물론, 이젠 성적도 조금 신경 쓰인다”고 고백했다. 흥행은 점칠 수 없다지만 ‘파과’로 이미 얻은 값진 것도 있다.
“스무 살쯤부터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건 물론이고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외면도 시니어 모델처럼 ‘저 할아버지 진짜 멋있네?’라고 듣고 싶거든요. 이혜영 선생님이 나의 롤모델이다 싶어요. 그렇게 멋지게 나이 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