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일 더기버스 대표(왼쪽)와 그룹 피프티피프티 키나 / 사진=더기버스 제공·일간스포츠DB
2023년,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피프티피프티 분쟁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현재 1심 판결 이후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사안 전체의 옳고 그름을 단정할 시점은 아니지만, 성명표시권에 관련된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어 가장 최근 발생한 법적 사례로 성명표시권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당시 프로듀서 안성일이 운영하는 ㈜더기버스 측은 지난 2023년 7월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 저작권 취득이 적법한 것이며 몰래 구입한 것이 아니라고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 중 성명표시권에 대한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는 저작권을 보유한 저작자에 대한 등록 및 관리의 주체로서, 등록 이전에 이미 더기버스가 그들로부터 ‘큐피드’ 원곡에 대한 저작권을 양수한 상태에서 음저협 관계자와 긴밀히 협의해 정상적으로 등록했다.
2) 음저협 웹사이트에 기재된 지분 내역은 등록 당시 실제 완성곡 작품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작가들의 내역이어야 하기 때문에, 등록 이전에 더기버스에게 저작권을 양도한 해외 원곡 작곡가 명의가 포함되지 않음은 절차상 당연하다.
3) 성명표시권 (입장문에서는 ‘성명권’으로 기재)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음원이 공식적으로 공표된 음원 사이트에는 저작자들의 크레디트 정보를 표기하였다.
사진=음악저작권협회 홈페이지 캡처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의 구분입니다.
저작권을 양도했다는 것은 속칭 저작권을 ‘팔았다’는 일종의 저작재산권 개념의 이야기지만, 성명표시권은 저작인격권에 해당하는 일신전속적권으로 사고 팔거나, 포기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저작권을 ‘팔았다’고 하더라도 음악저작권협회의 저작물 등록 정보에는 원저작자의 이름이 지워질 수 없습니다.
보통 협회에 등록된 다른 곡들의 경우 저작권을 사고 팔더라도 원 저작자의 성명(혹은 예명) 표기가 우선되고 그 옆 ‘양수자’란에 권리 이전 사실이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를테면 저작권을 ‘팔았다’고 발표된 유명 작품 중 ‘소주 한 잔’ 또한 원저작자인 임창정의 성명은 그대로 유지되고 그 옆에 양수자가 병기돼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이기도 합니다.
사실 음저협과 긴밀한 상의를 거쳤다고 전제했지만, 저작권을 양도해서 저작권 지분이 없기 때문에 해외 원곡 작곡가의 명의를 기재하지 않았다는 더기버스 측의 입장은 기존 다른 곡들의 등록 사례와도 맞지 않으며 성명표시권과 배치됩니다.
사진=멜론 홈페이지 캡처
◇ 성명표시권, 어떻게 기재해야 하나요?
한 음악 프로그램 작가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했습니다.
“작곡가님 닉네임이 너무 이상해서요. 욕설같기도 하고. 다른 곡의 경우, 이분의 본명을 사용하기도 하던데, 저희 프로그램 이미지가 있어서… 이 작곡가님 본명을 기재하는 것으로 정리해도 될까요?”
저는 바로 답을 드렸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무조건 발표된 대로 기재해주세요.”
어느 PD는 이런 문의를 줬습니다.
“아니 작사, 작곡가가 한두명도 아니고요. 외국사람도 있고… 이분들 전부 기재하면 너무 길어지는데, 그냥 곡 제목 넣고 원곡 가수만 기재하면 출처 표기되는 거 아니에요?”
이에 대한 대답 역시 동일합니다.
“안됩니다. 차라리 원곡 가수명을 삭제하더라도 작사, 작곡자는 무조건 기재해야 합니다.”
◇ 이름에도 창작자의 의도가 담긴다
클래식 가곡과 가요 등 여러 장르에서 작품을 남긴 원로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당부를 남기셨습니다. “내가 평생에 걸쳐서 여러 작품을 만들었는데, 작품의 장르에 따라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만들었어요. 그래서 내 작품 중 클래식 가곡을 사용한다면 OOO라고 적어주시고, 가요 작품을 사용한다면 ㅁㅁㅁ라고 적어주세요.”
또 어떤 작곡가는 “내가 주로 작업하는 곡의 장르랑 내 본명이 느낌상 매칭 되지 않아서요, 내 작품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본명을 쓰지 말고 내 닉네임(예명)으로 써주세요”라고 입장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 이름을 밝히지 않을 권리도 있다
반대로 어떤 창작자는 “그 작품은 과거에 만든 작품이 맞지만 그 작품으로 내 이름이 세상에 다시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쓰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내 이름을 꼭 빼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성명을 절대로 기재하면 안됩니다. 저작권법 12조는 ‘그 저작자의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는 때에는 저작자가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한 바에 따라 이를 표시하여야 한다’ 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기재하지 말아 달라는 ‘특별한 의사표시’가 있을 때에는 그에 따라 기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 이름은 저작자의 마지막 흔적
가수는 목소리로 작품을 남기지만 창작자는 이름을 통해 존재를 남깁니다, “어차피 같은 사람이니까 편의상 본명으로 표기하자”, “자막이 길어지니 이름은 생략하자”는 논리는 어디까지나 제작자의 편의일 뿐, 저작자의 권리와는 무관하며 “저작권을 팔았으니 이름도 삭제하자”는 것 또한 잘못된 판단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남길 것인가는 창작자가 스스로 정할 권리이며, 이용자는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이 참여하는 모든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표기법대로 기재해야 함’이라는 동일한 안내를 드리고 있습니다. 본명 대신 예명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장르별로 다른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것도 모두 존중받아야 할 창작자의 의도이자 권리인 것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굿보이’, ‘싱어게인’, 넷플릭스 ‘살인자0난감’, tvN ‘선재업고튀어’, MBC ‘굿데이’,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과 베이비몬스터, 변우석 등 아티스트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