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한일 협업 음악 프로그램들은 과거 일방향적인 전파에 머물던 한일 음악 교류에서 벗어나, 이제 한국을 거점으로 양국 시청자를 동시에 겨냥하는 통합적 기획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지난주 종영한 ENA ‘체인지 스트릿’은 한일 양국 아티스트가 서로의 거리와 공간으로 들어가 버스킹을 펼치는 프로그램으로 ‘꽃보다 남자’의 OST ‘Paradise’를 만든, 한국의 거장 음악감독 오준성이 연출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아티스트 코다 쿠미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으는가 하면, Mnet에서 방송된 ‘언프리티 랩스타: 힙팝 프린세스’ 또한 한국인 20명, 일본인 20명이 함께 경쟁하는 한일 합작 프로젝트로 ‘三代目 J SOUL BROTHERS from EXILE TRIBE’의 이와타 타카노리가 프로듀서로 출연하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제작진이 주도하는 일본 현지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혜진PD가 이끄는 크레아스튜디오는 일본 후지TV를 통해 ‘2026 한일가왕전’에 출전할 일본 여성 TOP7을 선발하는 ‘현역가왕-가희’를 준비하고 있으며, ‘PRODUCE 101 JAPAN SHINSEKAI’ 역시 한국의 Mnet 제작진이 제작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일 음악 콘텐츠는 한국의 제작 시스템이 일본 현지 아티스트 선발 및 글로벌 유통까지 함께하는 산업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내 음악 산업 위상의 변화는 한국을 찾는 일본 아티스트들의 면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ENA ‘체인지 스트릿’은 코다 쿠미를 비롯하여 ‘모닝구 무스메’의 다카하시 아이와 일본 R&B의 대표주자 크리스탈 케이 등 J팝을 상징하는 여가수들이 대거 출연했고, MBN에서 방영된 ‘2025 한일가왕전’은 일본의 국민가수 마츠자키 시게루와 일본 힙합 레전드 ZEEBRA의 출연에 이어 오는 4월 14일 첫 방송되는 ‘2026 한일가왕전’에 ‘눈의 꽃’의 원 가수이자 J팝 감성 발라드의 상징인 나카시마 미카가 멘토로 출연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중견 아티스트들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 밴드 신에서 존재감으로 주목받고 있는 ‘노벨브라이트’의 보컬 타케나카 유다이는 ‘2025 한일가왕전’에 참가자로 출전하며 한일 양국에 충격을 안겼으며, SMAP과 아라시를 잇는 일본 최정상 남성그룹 스노우맨은 작년 8월 한국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에 처음 출연하며 현역 아이돌 그룹의 한국 플랫폼 진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바 있습니다. 보아가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며 ‘아시아의 별’로 불리며 일본 진출이 한국 가수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2000년대와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일본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한국 음악 산업이 글로벌 팬덤을 증폭시키는 허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음악방송 출연은 유튜브 직캠과 숏폼, 해외 팬덤의 실시간 반응을 거쳐 글로벌 플랫폼으로 재유통되는 강력한 파급력을 지닙니다. 일본의 연예 기획사 BMSG의 대표 스카이하이(Sky-Hi)가 젊은 일본 인재들이 한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BMSG 출범 당시 ‘K팝과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일본 문화’를 만들겠다는 발언 역시 달라진 일본 내 인식 변화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이렇듯 음악의 국경 없는 유통과 편집이 활발해질수록 저작권 점검의 영역 또한 전 지구적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대 공연부터 방송 송출, 다시보기(VOD) 서비스, SNS 클립, 글로벌 플랫폼 업로드 및 음원 발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콘텐츠가 소비되는 모든 과정은 저작권법상 각각 독립된 이용 행위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잡한 이용 행위 속에서, 특히 가장 큰 장벽인 ‘언어’의 차이는 저작권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이 됩니다.
사실 한국 대중음악은 오래전부터 일본 원곡을 번안하고 리메이크해 왔습니다. 박효신의 ‘눈의 꽃’, 포지션의 ‘I Love You’, 캔의 ‘내 생애 봄날은’, 엠씨더맥의 ‘잠시만 안녕’ 등을 비롯해 최근 발표된 10CM의 ‘너에게 닿기를’ 까지, 그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번안’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닙니다. 음악에서 ‘언어’는 사전적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는 단어의 뜻만이 아니라 발음과 호흡점, 성조, 음절 수, 강세, 라임, 플로우, 리듬과 멜로디에 얹혔을 때의 감각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노래를 만듭니다.
그렇기에 번안은 단순한 번역이라기보다 ‘재창작’에 가깝습니다. 특히 음절 구조와 억양 체계가 다른 일본어와 한국어는 호흡과 울림의 지점 자체가 다릅니다. 같은 의미라도 표현에 따라 리듬을 어긋나게 하거나 멜로디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번안은 의미 전달을 넘어 음악적 완성도를 다시 세우는 치밀한 공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일본어 원곡을 한국어로 옮기거나, 일본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를 섞어 새 버전을 만들거나, 방송용으로 가사 배열과 편곡을 재구성해 자막·클립·음원으로 고정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2차적저작물작성권’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같은 뜻으로 옮겼느냐’가 아니라 ‘원곡의 표현 방식을 어디까지 새로 구축했느냐’에 있습니다. 따라서 한일 음악의 번안 문제는 ‘가사를 바꿨으니 2차적 저작물이다’ 혹은 ‘뜻만 같으니 문제없다’ 라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창작자에게는 특정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느냐만큼이나, 어떤 표현을 원문 그대로 남겨둘 것인가 또한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어와 한국어 가사를 섞어 부르거나 일본어 가사를 한국어로 자막 처리하는 행위 등은 원저작자가 고수하고자 하는 표현의 본질, 즉 ‘동일성유지권’과 충돌할 수 있는 민감한 지점이 됩니다.
다른 장르의 사례이긴 하지만, 만화 ‘슬램덩크’의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송태섭의 손바닥에 이한나가 남기는 응원의 문구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판 초판 발행 당시부터 ‘NO.1 가드’라는 번역 대신 ‘No.1ガード’라는 일본어 표기를 그대로 수록했고, 하단에는 ‘작가와의 협의에 의해 원문 그대로 표시했다’는 주석이 덧붙여졌습니다. 이는 경우에 따라 원문 의미보다 작가가 의도한 원문 표기 방식, 글자 형태, 그리고 장면 특유의 감정선 자체가 더 우선적인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창작자는 왜 그 단어를 남기고 왜 그 단어를 바꿨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닌 소리와 호흡, 원곡의 동일성과 변형을 둘러싼 치열한 창작의 영역이자 권리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한일 음악 콘텐츠의 진짜 경쟁력은 섭외력이나 화제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복잡한 저작권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