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막강 타선의 윤곽이 구체화되고 있다. 구자욱-르윈 디아즈-최형우-김영웅으로 이어지는 무게감 있는 중심 타선이 주목받는 가운데, 이들 앞에 공격의 물꼬를 틀 리드오프 자리에 유격수 이재현이 낙점된 모양새다.
이재현은 지난 시범경기에서 1번 타자로 22타수를 소화, 타율 0.364(8안타) 2홈런 4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가장 유력한 리드오프 후보였던 김지찬은 9번 타순에서 더 많은 타석을 소화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28일 개막전(대구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이재현이 리드오프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유격수가 가장 많은 타석을 소화하고 루상에서 활발히 움직여야 하는 1번 타자까지 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장거리 타구 생산 능력을 갖춘 만큼, 팀의 중심타선을 받칠 하위 타선에 배치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재현은 시범경기 1번 타순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입증하며 외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사실 '1번 타자 이재현' 카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그는 9번(134타석)보다 1번 타순(150타석)에서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당시 기존 리드오프 자원들의 연쇄 이탈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우며 1번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삼성 이재현. 삼성 제공
전술적 노림수도 명확하다. 경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 1번 타자는 단순히 선두 타자를 넘어 9번과 중심 타선을 잇는 연결 고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삼성은 김지찬-김성윤 등 단신 타자들을 테이블세터에 몰아넣는 대신, 김지찬을 9번으로 배치하고 장타력과 출루 능력을 겸비한 이재현을 1번에 전진 배치해 '출루'와 '타점'의 시너지를 동시에 잡겠다는 계산이다. 상황에 맞는 타격 능력을 갖춘 이재현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삼성은 이재현은 단순한 '1번 타자'로 보지 않는다. 이닝을 거듭할수록 1번 타자는 선두타자보단 하위타선과 중심타선의 연계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삼성은 김지찬-김성윤 '최단신 듀오'를 테이블세터에 붙이지 않고 김지찬을 9번으로 이동, 가운데에 중장거리 능력도 있는 이재현을 넣어 출루와 타점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한다. 이재현 역시 상황별 타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수다. 이재현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이재현은 이번 시범경기 전체 11경기에서 타율 0.353(34타수 12안타), 출루율 0.405, 장타율 0.647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홈런도 2개가 있었고 4타점을 뽑았다. 정규시즌에도 이 페이스가 유지된다면, 하위 타선에서 시작된 찬스가 중심 타선으로 극대화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다.
삼성 이재현. 삼성 제공
이재현은 지난겨울 주중에는 대구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하고, 주말에는 서울의 배팅 아카데미를 오가며 타격을 가다듬는 강행군을 자처했다.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이도 저도 아닌 선수가 될 것 같았다"는 것이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찍질한 이유다.
독하게 벼른 비시즌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을 때가 왔다. 올 시즌 대권에 도전하는 삼성 타선의 파괴력은 이재현의 방망이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