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초반 나성범(37·KIA 타이거즈)의 방망이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시즌 첫 8경기 타율이 0.188에 머물렀다. 전성기 시절 6할대 후반까지 치솟았던 장타율 역시 2할대로 떨어지며 우려를 낳았다. 이름값을 떠올리면 더욱 '어색한 성적표'였다. 일각에서는 '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됐다.
시즌 첫 10경기 중 9경기에 출전한 나성범은 이 가운데 4경기를 지명타자(DH)로 소화했다. 최형우(삼성 라이온즈)의 이적으로 지명타자 출전 빈도가 부쩍 늘었는데, 이 변화가 타격 리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야 수비를 병행하던 때와 달리, 경기 중 몸을 계속 움직이며 리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 부상 탓에 2024년 지명타자 출전 비율이 높았던 외야수 이주형(키움 히어로즈)은 "몸에 열이 나지 않는 거 같다. (더그아웃에만 있으니) 잡생각이 많아지더라. 아웃을 당하면 못 친 장면만 계속 떠올리게 된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지명타자의 고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8일 광주 삼성전에서 5타점 맹타를 휘두른 나성범. KIA 제공
나성범 역시 이를 인정했다. 그는 8일 광주 삼성전을 마친 뒤 "(지명타자 출전에 대해) 아직 조금 힘들기도 하다. 더그아웃에서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기 중) 시간 나면 실내(연습장)에 가서 막 뛰고, 배팅 연습도 하고 하는데 원정에선 그런 공간도 없어서 어려움이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타석에만 집중하는 지명타자 역할이 오히려 루틴을 찾는 데 혼란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최형우가 팀을 떠나면서 KIA의 지명타자 운용 폭도 한층 넓어졌다. 나성범이 지명타자로 나설 경우 박재현을 비롯한 외야 유망주들에게 자연스럽게 출전 기회가 돌아간다. 주전과 유망주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8일 광주 삼성전에서 홈런을 때려낸 나성범의 모습. KIA 제공
결국 관건은 나성범의 적응이다. 지명타자라는 낯선 역할 속에서 타격 리듬만 되찾는다면, 팀 전력 운용의 유연성은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베테랑의 반등과 유망주의 성장. KIA가 기대하는 그림은 분명하다. 8일 삼성전에서 시즌 개인 한 경기 최다 5타점을 몰아친 나성범은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거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