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KBO리그 판도가 심상치 않다. 현재 KBO리그 선두는 17경기에서 12승 4패 1무, 승률 0.750을 기록 중인 삼성 라이온즈로, 그 뒤로 KT 위즈가 13승 5패, 승률 0.722의 맹렬한 기세로 그 뒤를 쫓고 있다. 두 팀이 선두권에서 1, 2위 다툼을 벌이는 것은 정규시즌 승률 동률로 KBO 역대 최초의 1위 결정전을 치렀던 2021년 이후 처음이다.
두 팀은 지난 20일 나란히 패하긴 했지만, 그전까지 각각 7연승(삼성)과 4연승(KT)을 내달렸다. 지난주 삼성은 지난해 한국시리즈(KS)에서 맞붙은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를 차례로 만나 4승 1패를 거뒀다. 한화에 스윕승을 거뒀고, LG와는 우천 취소(17일) 한 차례 후 1승 1패 동률을 이뤘다. KT는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2승 1패씩 4승 2패를 기록했다.
두 팀의 호성적은 현재 정상적인 전력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두 팀은 주축 선수들의 연쇄 부상으로 베스트 라인업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백업 및 대체 선수들이 빈틈없는 활약을 펼치는 이른바 '잇몸 야구'를 통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의 부상자 명단은 핵심 자원들로 가득하다. 시즌 시작 전부터 삼성은 토종 에이스 원태인(오른 팔꿈치 굴곡근 통증)과 외국인 투수 맷 매닝(오른 팔꿈치 인대 수술) 필승조 이호성(오른 팔꿈치 내측인대 수술)이 차례로 이탈하며 위기를 맞았다. 시즌 시작 후엔 외야수 김성윤(왼 옆구리 근육 손상)과 내야수 김영웅(왼 햄스트링 부상) 외야수 구자욱(갈비뼈 실금) 김태훈(왼 햄스트링 통증)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신인 투수로서 삼성 마운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장찬희. 삼성 제공삼성 백정현-최지광. 삼성 제공
하지만 현재 삼성은 부상자들의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순항하고 있다. 일단 마운드는 불펜진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원태인이 복귀하고 대체 외국인 투수 잭 오러클린이 합류했지만 아직 긴 이닝을 소화하지는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부상에서 돌아온 백정현, 최지광, 신인 장찬희, 아시아쿼터 미야지 유라 등 불펜진 새 얼굴들이 공백을 탄탄히 메워주고 있다. 5선발 후보였던 양창섭도 기대 이상의 준수한 활약을 펼치면서 삼성은 팀 평균자책점 3위(4.17)에 해당하는 호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야수진도 잇몸으로 잘 버티고 있다. 김성윤이 빠진 테이블세터·외야수 자리엔 부상에서 돌아온 박승규가 공수 양면에서 활력을 불어넣으며 훌륭히 대체 중이다. 김영웅이 이탈한 3루수엔 전병우가 득점권 상황마다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며 장타 및 타점은 물론, 수비 공백도 효과적으로 상쇄하고 있다. 내야수 양우현 역시 백업 이상의 활약을 톡톡히 해주는 중. 현재 전병우가 12경기 타율 0.394, 박승규가 7경기 타율 0.345, 양우현이 6경기 타율 0.375로 맹활약 중이다.
KT 안현민-허경민. KT 제공
KT 역시 타격이 적지 않다. 팀 타선의 핵심이자 맹타를 휘두르던 외야수 안현민과 주전 3루수 허경민이 나란히 햄스트링 부상으로 1군에서 동반 말소됐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내야에 새 활력을 불어 넣었던 류현인마저 손가락 골절상으로 이탈하며 내외야에 모두 구멍이 뚫렸다. 허경민이 7경기 타율 0.522, 안현민이 14경기 타율 0.365, 류현인이 15경기 타율 0.282로 활약하고 있던 터라 이들의 부상이 더욱 안타까웠다.
하지만 KT 역시 수년간의 폭풍 영입과 선수층 강화 노력으로 이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 안현민의 빈자리는 주전급 외야수 배정대가 안정적인 수비와 노련한 타격으로 메우고 있고, 허경민과 류현인의 이탈로 헐거워진 내야는 장준원과 권동진이 빈틈없이 틀어막고 있다. 특히 장준원은 견실한 내야 수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16일 창원 NC 다이노스전 9회 극적인 결승 솔로포를 터뜨린 데 이어 18일 수원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에이스 안우진을 상대로 장타를 때려내는 등 팀 연승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영양가 높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양 팀 감독은 현재의 성적이 단순한 운이 아님을 시사한다. 철저한 계산과 준비가 뒷받침된 결과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삼성 박진만-KT 이강철 감독. 구단 제공
삼성 박진만 감독은 "장기 레이스를 대비해 스프링캠프 단계부터 부상자 발생 상황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 현재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대체 선수들이 주전급으로 잘 메워주고 있어 팀이 잘 버티고 있다"라며 "부상 선수들이 복귀하면 팀의 선수층이 훨씬 두터워질 것이며, 현재 출전 중인 대체 선수들이 이 시기에 기회를 잡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KT 이강철 감독 역시 "우리 백업(선수층)이 탄탄해졌다. 올 시즌 (영입으로) 탄탄해진 전력에 백업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못할까 봐) 미안하고 걱정도 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백업 선수들이 잘 메워주고 있어서 다행이고 고맙다"라고 이야기했다.
장기 레이스에서 부상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다. 현재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삼성과 KT의 행보는 '주전 9명의 이름값'이 아닌 '대체 선수들의 객관적인 기량과 뎁스'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기록이 이들의 '튼튼한 잇몸'을 증명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