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감의 샘터 제공 스페인 북부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이 대한민국 대중문화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음악, 출판, 공연, 방송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며 ‘치유’와 ‘고립’의 가치를 담은 콘텐츠로 재해석되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악뮤(AKMU)의 정규 4집 ‘개화(FLOWERING)’가 대표적 사례다. 멤버 이수현이 음악 활동 중 슬럼프를 겪은 뒤 산티아고 순례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회복의 과정이 앨범 전반에 녹아들었다. 이후 오빠 이찬혁과 함께한 두 번째 순례 경험까지 더해지며 서사가 완성됐고, 이는 고스란히 음악으로 이어졌다.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과 선공개곡 ‘소문의 낙원’이 나란히 차트 상위권을 기록하며, 개인의 상처와 치유를 담은 메시지가 대중적 공감으로 확장됐다는 평가다.
뮤지컬 ‘까미난테’ 포스터. 출판과 공연계로의 확장도 이어지고 있다. K팝 기획자 나상천은 순례길 완주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 소설 ‘어느 멋진 도망’을 발표하며, 경쟁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멈춤’과 ‘도망’의 의미를 되짚었다. 이 서사는 2027년 뮤지컬 ‘까미난테’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해당 작품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길에 오른 인물들이 서로를 통해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리며,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무대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체험형 치유’를 제시할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은 기존 콘텐츠가 축적해온 ‘산티아고 서사’와도 맞닿아 있다. 방송인 손미나의 다큐멘터리 영화 ‘엘 카미노’는 순례자들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의 가치를 조명했고, 차승원과 유해진이 출연한 예능 ‘스페인 하숙’은 낯선 타지에서 건네는 한 끼 식사를 통해 위로와 환대의 의미를 전달했다. ‘같이 걸을까’ 역시 그룹 god 멤버들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함께 걷는 여정을 통해 연대와 관계 회복의 감정을 끌어냈다.
연예인들의 실제 경험담도 이러한 흐름에 힘을 보탰다. 배우 김유정은 33일의 순례를 통해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밝혔고, 정일우는 세 번의 순례 경험을 통해 삶의 의지를 다졌다고 전했다. 정경호 역시 아버지 정을영 PD와 함께 길을 걸으며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밝히며, 순례길이 개인의 치유를 넘어 관계 회복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결국 ‘산티아고 신드롬’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시대적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빠른 속도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기 속도로 걷는 시간’이라는 메시지가 강력한 위로로 작용하며, 다양한 콘텐츠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