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간 소설 ‘어느 멋진 도망’의 나상천 작가에게 이 같은 수식어가 어떻겠느냐 묻자 작가는 빙긋 웃으며 긍정의 화답을 했다.
‘어느 멋진 도망’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네 인물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K팝 기획자이자 극작가와 소설가인 나상천 작가는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최근 KG타워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난 나 작가는 “이 현실에서 도망가야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고 산티아고행의 배경을 설명하면서도 “막상 도망을 갔던 곳에서, 이 현실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나를 만나고 보게 되면서 나를 본다는 게 참 멋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시작은 도망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를 찾게 되는 게 진정한 여행이고 도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설의 제목에 대해 부연하며 말했다.
‘어느 멋진 도망’. (사진=프라먼트 제공) “모든 걸 직면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휴식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여행을 통해 얻은 큰 깨달음을 우리 딸에게 들려주고 싶었죠.”
2017년 아내와 어머니를 연달아 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감 앞 일곱 살 난 딸의 아버지라는 일상의 이름은 나 작가를 스러지지 않고 움직이게 한 유일한 힘이었다. 가수 경서의 소속사인 꿈의엔진 대표라는 명함은 누군가에겐 화려하고 부러운 수식이었지만, 궁극의 고통 앞엔 무용했다. 약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는 불면의 밤을 수년간 보내온 작가는 가까운 지인의 손에 이끌려 산티아고 행에 나섰다.
물집을 터뜨려가며 고통 속에 포기를 꿈꾸며 나아가던 행군이었지만 중반부에 접어든 뒤 조금씩 달라졌다. 함께 걷는 지인과 주변의 걷는 사람들 그리고 지나치는 풍경들이 보였고, 다음엔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됐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도 흡사 작가를 닮았다. 아내를 잃고 요리사로 새 삶을 시작한 중년 셰프 킴스, 오디션 낙방의 고배를 마시는 싱어송라이터 지망생 도로시, 불가능에 가까운 구독자 33만 명 미션을 수행 중인 유튜버 로저, 무거운 비밀을 안고 길 위로 숨어든 스물한 살 청년 준상까지. 소설은 이들이 33일간 같은 길을 걸으며 각자 도망쳐온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와 변화를 맞이하는 과정을 담았다.
나 작가는 “저도 그들 하나하나에 투영됐지만, 실제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엔 도망치듯 온 사람,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온 사람, 뭔가를 내려놓고 싶어 온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더라”면서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이 길의 힘을 춤과 노래로 녹여내고 싶어 대본으로 먼저 썼고, 그 대본의 해설서 같은 느낌으로 소설로도 쓰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나상천 작가. (사진=꿈의엔진 제공) 그는 두 번의 산티아고 순례길 행군을 통해 불안과 걱정, 고통을 내려놓은 뒤 비로소 삶의 용기를 그리고 지혜를 얻었다고 했다. 작가는 “용감하게, 지혜롭게, 가치있게 살자는 이야기를 딸에게 해주고 싶었다. 인생은 기쁨도, 슬픔도 동시에 함께 있는 거고, 그건 다 받아들여야 하는 거고, 아름다운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얼마 전 나온 악뮤의 노래 속 가사가 완전 똑같더라. 그 가사를 보고 펑펑 울었다. 결코 헤아릴 수 없는 깨달음 같은 마음이 담긴 노래였고, 그런 노래를 만들어준 악뮤에게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소설은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끝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나 작가는 “각 주인공들이 나름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진행형이다. 때문에 소설의 결말이 마침표는 아니”라며 “답을 찾고, 또 다른 문제를 만나고, 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계속 걸어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을 일으키고, 서 있을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나 작가. “‘어느 멋진 도망’은 특별한 의미다. 소설로서 첫 작품이라 그렇고, 이 책을 통해 다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하고, 떨리고, 감사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소설 출간과 함께 이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까미난떼’를 병행 개발 중이다. 지난 2월 넘버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까미난떼’는 내년 8월 정식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책에 써내린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무대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나상천 작가. (사진=꿈의엔진 제공) 당분간 나 작가는 K팝 기획·제작자의 업무보다 작가이자 뮤지컬 제작자로서의 일에 골몰할 계획이다.
“사실 제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죽음에서 자유로워지죠. 그러니 하루가 엄청 가치 있고, 빨리 흘러가는 느낌이에요. 더욱 소중하게 쓰게 되는 거죠. 지금도 작품 4개를 써 놨어요. 하나하나 꺼내놓고, 온전히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꿈꿔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가다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는 마음이에요. 안 되면 말고. 핵심은 일단 ‘가보자고’죠.”
나 작가는 또 “창작 욕구를 주체할 수가 없고, 뭔가 자꾸 이야기 하고 싶어진다. 어디에 가기만 하면 (글감이) 떠오르는데, 그게 참 감사하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꿈꿔왔던 걸 참고 있다가 어느 시점이 되어 터져 나오니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묘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저의 사명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하루하루”라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이 책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면 좋겠다. 가방 속 필수 아이템이 되길, 여행 떠나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