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만으로도 위대하지만, 최근 양현종(38·KIA 타이거즈)의 투구를 보면 이 기록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양형종은 20대에는 150㎞/h 육박하는 강속구를 앞세워 타자들을 압도했다. 지금은 스피드가 눈에 띄게 떨어진 상황.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을 쫓지 않는다.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투구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빠른 공으로 압도하기보다 노련함으로 승부하고, 긴 이닝을 책임지기보다 팀이 승리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지난 18일 광주 LG전에서 통산 190승을 달성한 양현종. KIA 제공
그는 "나보다 더 좋은 투수가 뒤(불펜)에 있다"며 "예전에는 6이닝, 7이닝 이상 던지면서 게임을 압도하고 지배했다고 해야 하나, 우리 쪽으로 (승리를) 끌고 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면 솔직히 지금은 그런 힘이 많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팀이 이기는 상황이나 게임이 될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 놓고 내려오는 게 내 역할"이라고 몸을 낮췄다.
예전처럼 빠르지 않아도, 양현종은 뚜벅뚜벅 전진하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광주 LG 트윈스전에서 KBO리그 역대 두 번째 통산 190승 고지를 밟았다. 오랜 시간 리그 정상급 투수로 활약해 온 그에게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기록만큼이나 투구 내용이 더 큰 인상을 남겼다.
베테랑 왼손 선발 양현종의 투구 모습. KIA 제공
이날 양현종의 직구 평균 구속은 136㎞/h(최고 142㎞/h)에 머물렀다. 1회 초 선두타자 홍창기에게 던진 초구 직구 구속은 134㎞/h로 측정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 150㎞/h 육박하던 강속구를 앞세워 타자들을 압도했던 모습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구속이 줄었다고 해서 경쟁력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양현종은 완급 조절과 노련한 경기 운영을 앞세워 LG 강타선을 5이닝 2실점으로 막았다. 그리고 89구를 소화한 뒤 교체됐다. 과거의 양현종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사상 첫 10년 연속 170이닝 투구를 달성한 대표적인 '이닝이터'였고 경기 후반까지 마운드를 지배하는 에이스였다. 김광현(SSG 랜더스) 류현진(한화 이글스)과 함께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왼손 트로이카의 한 축으로 군림하며 상대 타선을 힘으로 눌렀다.
지난 18일 광주 LG전에서 통산 190승을 달성한 양현종. KIA 제공
190승은 단순히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숫자가 아니다. 변화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낸 결과다. 전성기의 속도를 잃은 대신 노련함을 얻은 양현종. 그가 써 내려가는 야구에는 세월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 베테랑의 품격과 '느림의 미학'이 담겨 있다.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구속이 크게 떨어진 양현종. 구속에 집착하지 않고 경기 운영으로 노련하게 버티고 있다. KI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