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 ① 욕심
박지효 기자
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감정을 잃은 세상
세상의 규칙이 곧 내 삶일 이유가 있을까? 뜨겁게 달궈진 땅을 꾹꾹 지르밟으며 생각한다. 무념 무상한 발걸음으로 문을 열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텅 비어 있는 자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살갗이 익을 듯한 더위에서 도망쳐 한숨을 고르던 중, 책상 위 수경이 나를 불렀다. 뿌예진 수경을 집어 들고 교실을 떠났다.
복도를 걸으며 주변 풍경을 살핀다. 단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발을 들인 이곳은 ‘잘못된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개설된 센터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반항아를 교육하는 시설. 우리 센터는 발전된 기술에도 불구하고 옛 학교를 빼닮아 있었다. 노후화된 시설을 보수공사 해주면 좋겠는데, 담당 국가 부서는 그럴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센터는 그들에게 거슬리는 존재일 뿐이니 관심 없겠지.
“혹시 배서화 있어?”
옆 반의 문 앞에 우뚝 섰다. 최대한 부드럽게 건넨 말이었지만 왜인지 교실 안 아이들은 일제히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불량 학생 출석? 꽤 재밌는 일이네.”
“사돈 남 말하지는 말지. 오늘 끝나고 모일 거야?”
서화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시선을 피했다.
“맘대로 해. 나한테 묻지 말고.”
퉁명스러운 말을 끝으로 교실 전자 칠판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용은 매번 비슷하다. 화면에 송출되는 여러 알약과 고글이 지긋지긋하다. 우리 사회는 자꾸만 내게 효율과 이성을 요구한다. 저런 뉴스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면 양팔에 소름이 돋는다. 아나운서를 대체한 인공지능 로봇은 아무런 몸짓과 표정 변화 없이 딱딱하기 그지없는 단어로 입력된 값을 출력해 낸다.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도달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따라 하고 있으니까. 이 기괴하고 끔찍한 사회를 누가, 무슨 수로 시작했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저 ‘시술’을 받는 건 지금의 사회에 굴복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서화가 정신 차리라는 듯 멍때리던 나의 왼쪽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제야 구겨진 인상을 풀고 뒤돌아섰다.
오랜만에 수영장에 들어서니 알싸한 향이 코를 찔렀다. 파란 바닥에 떨어진 투명한 물방울이 눈 아픈 형광등의 빛을 반사했다. 첨벙대는 소음과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수영장 전체를 울려댔다.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충동적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약품 냄새가 가득한 액체가 온몸을 감쌌다. 귀가 먹먹해져서 마치 이곳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물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고요했고 시야에는 오로지 다른 이들의 다리만 들어왔다. 모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세상을 몇 초 동안 구경했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홀딱 젖어버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배워볼 마음도 없어? 수영 말이야.”
“싫다니까.”
서화는 우리 센터 수영부의 부장, 나는 차장이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서화는 수영장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거다. 싫어한다는 표현을 넘어서 증오하고, 혐오한다. 나도 저런 애가 왜 부장 자리에 올랐는지 잘 모르겠다. 나 또한 수영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센터가 강제적으로 차장 자리를 떠맡겼다. 서화가 아니었더라면 거세게 반항해서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동안 서화와 나는 계속해서 수영장에 남아 있었다. 나는 수영 가방에서 자그마한 향수병을 꺼내 그대로 손목에 서너 번 덧대어서 뿌렸다. 향수가 고르게 공중에 흩날리며 호흡기를 쿡쿡 찔렀다. 곁에 있던 서화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콜록대며 반응했다.
“적당히 뿌려. 피부 다 상하겠네.”
“참견은.”
장난스럽게 향수병을 서화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우리 둘은 그저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어느새 낡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노을빛에 몸이 노곤해졌다. 시끄럽게 촐랑대던 수영장도 노을빛에 취한 것인지 조용해졌다. 이윽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센터에서는 기숙사까지 제공해 주었다. 그마저도 감시를 위한 것이지만. 협소한 크기여도 최악은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침대에 벌러덩 엎어졌다. 방금 씻었는데도 무더운 날씨 탓에 피부가 끈적거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때문에 표정이 구겨졌다. 냉방 시스템의 성능이 좋지 못해서 숨을 들이켤 때마다 온실 속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온실 속 내 위치는 바닥 틈새로 자라난 잔디 정도 될까. 잡생각을 내려놓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래, 틈새로 자라난 게 어디인가. 짓밟히지만 않으면 될 일이잖아. 다리를 쭉 뻗던 도중 침대 난간에 무릎을 부딪쳤다. 찌릿찌릿한 감각에 눈물이 맺혔다. 그때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본교 재학생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오후 일곱 시, 각 방에 이모션 사이클 교육 방송이 송출될 예정입니다. 이에 오후 일곱 시 전까지 반드시 기숙사로 돌아가 제공된 고글을 착용한 후 영상을 시청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교육은 무슨. 입에서 욕설이 새어 나왔다. 잠깐만 참자. 영상이야 무시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숨과 함께 투명한 고글을 눌러썼다. 교육 영상 시청을 목적으로 배부했던 건데 센터 예산이 부족했는지 구식이었다. 한창 시끄럽던 복도가 잠잠해졌다. 모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나와 같은 고글을 썼을 거다. 일곱 시가 되자, 고글로부터 얇은 초록빛 홀로그램이 허공에 송출되었다. 영상은 자주 지직거려 집중할 수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학생 여러분! 오늘은 이모션 사이클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명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신식 인공지능을 사용해 제작된 영상 같았다. 아무리 지껄여 봐야 센터 내에서는 듣는 애들도 없을 텐데 의외로 영상 하나에 들인 예산이 많아 보였다. 잠시 후 괴상한 효과음과 함께 자막이 게시되었다.
‘이모션 사이클(emotion cycle)이란?’
이어 인공지능 아나운서가 진행을 이어갔다.
“이모션 사이클이란, 말 그대로 감정의 순환입니다. 이 개념을 확장해 우리에게 최적의 감정 조절 능력을 제공하는 기술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원한과 분노, 슬픔과 증오와 같은 골칫거리 감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어느샌가 등장한 이모션 사이클.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거리낌도 없었는지 바로 이를 경험하기 시작했고, 사회는 변질되었다. 시작은 내가 꼬마였을 시절이다. 벽지가 벗겨지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방 안에서 거실의 소리를 훔쳐 들었다. 의문의 남성이 우리가 선생님이라 칭했던 대학생을 불러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대화가 지속되었다. 이때의 기억은 흐릿하다. 당시 우리 보육원은 등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시설이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찾아왔던 것인지 의문일 뿐이다. 어쩌면 어린 내가 깊은 밤에 꿨던 악몽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조각조각 엉겨 붙어 불완전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던 찰나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흠칫했다. 신경질을 내며 고글을 벗어 던졌다. 문을 여니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서화가 서 있었다.
“왜? 영상 보라잖아. 걸리면 혼나.”
“튀자.”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서화가 내 손목을 낚아채고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갔다. 바닥에 닿는 신발 밑창의 소리가 내게는 폭발음처럼 크게 들렸다. 달리고 달려 인적이 드문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넝쿨이 엉킨 펜스를 올려다보며 마음을 다잡고 담을 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순찰하는 이가 없었다. 뒷일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무작정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더니 발목이 욱신거렸다. 넝쿨의 초록색 잎이 서화와 내 머리카락 초록색 잎이 붙어 있었다. 키득거리며 서로를 놀렸다. 그때 스치는 서늘한 감각에 정신을 차렸다. 센터를 벗어난 이상, 마음대로 웃고 울면 안 된다. 즐겁지 않은 척 연기해야 한다. 배우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모션 사이클이 도입된 후 사람들은 더는 감정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이와 연결된 모든 예술계가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사회에서는 더 이상 희로애락이 필요 없었다. 감정을 소비하고 공유하던 예술이라는 행위는 시들어버렸다. 봄밤에 그리운 연인을 회상하는 곡도, 영화에서 눈물이 맺힌 채 이별하는 장면도 전처럼 의미 있지 못했다. 그저 효율성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로써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해? 효율? 결국 돈을 위한 것 아닌가? 이 사회의 논리라면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친구들을 향한 애정도 모두 필요 없었다. 그 가치를 몽땅 내버리고도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변명을 지껄일 수 있다고? 내 확고한 신념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런 어리석은 판단은 21세기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얼마 못 가 이 사회는 망하거나, 사라질 거라 믿었다.
어느새 몸은 교차로 앞에 와 있었다. 서화는 나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주친 시선이 따가워서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했다. 고개를 돌리니 어딘가 익숙한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분명 마주친 적 있는 차였다.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마치 승용차의 주변이 검은 연기로 둘러싸인 듯했다. 방향을 돌린 차는 곧 우리의 앞에 멈춰 섰다. 급히 서화를 밀치듯 두드렸다. 굳어지는 서화의 표정에 눈치껏 감정을 숨겼다. 보란 듯이 승용차의 창문이 내려갔고, 차가운 얼굴이 드러났다.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②회에서 계속)
박지효 기자 jihyop@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