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포수 김건희는 무사 만루 위기를 막고 내려오는 가나쿠보 유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멈칫했다. 평소 투수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농담을 즐기지만, 아는 일본어가 많지 않아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환한 웃음과 함께 엄지를 치켜세웠다. "스바라시!"
유토는 지난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에 7회 팀의 다섯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2이닝을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은 그는 팀의 3-1 승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7회 무사 만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오른 유토는 첫 타자를 병살타로 유도해 아웃카운트 두 개와 1실점을 맞바꿨고, 이후 타자들을 범타 처리하며 든든하게 제 역할을 다했다.
이날 유토는 시즌 10번째 홀드를 기록했다. 10홀드-12세이브를 달성한 그는 KBO리그 역대 최초로 '두 자릿수 홀드-세이브'를 올린 외국인 선수가 됐다. 리그 통산 12번째이자 구단 5번째 진기록이기도 하다. 경기 후 만난 유토는 "오늘 공이 뜻대로 잘 들어가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 기쁘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와 호흡을 맞춘 안방마님 김건희는 유토가 첫 등판할 당시 다소 안절부절못했다는 후문이다. 유토가 마운드에 오른 직후, 통역을 맡은 노지마 나오토 매니저가 "오늘 유토 컨디션이 안 좋다"고 귀띔했기 때문이다. '그럼 마운드에 올리면 안 되죠! 무사 만루인데!'라며 당황했다는 김건희는 다행히 유토의 첫 연습구를 받자마자 안도의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공 좋은데?'
실제 유토는 마운드에 서자마자 150㎞/h 초반의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을 거침없이 꽂아 넣었다. 빠른 공에 이은 포크볼로 까다로운 타자 김성윤에게 병살타를 유도했고, 강타자 구자욱을 상대로는 초구 포크볼로 타이밍을 뺏은 뒤 빠른 공 세 개로 윽박질러 삼진아웃을 솎아냈다.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유토는 최형우, 류지혁, 이재현을 삼진 처리하며 2이닝 무실점 투구를 완성했다.
경기 후 김건희는 "몸이 안 좋다더니, 막상 연습구를 받아보니 볼이 너무 좋았다. 속으로 '뻥이었네. 좋은 구종으로 밀어붙이자'라고 생각했다"며 "노병오 코치님께서도 '점수를 줘도 괜찮으니 가장 좋은 공으로 편하게 던져라'라고 주문하셨다. 마침 첫 타자 타구가 운 좋게 유격수 정면으로 향해 병살타가 됐고, 이후에는 그냥 힘으로 밀어붙였다"고 돌아봤다.
키움 유토. 키움 제공
외국인 최초 10홀드-10세이브. 유토 본인의 땀방울로 일군 대기록이지만, 김건희의 보이지 않는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구위가 뛰어난 투수라도 마운드 위에서 무거운 압박감에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김건희는 마운드에 올라 특유의 넉살과 스킨십으로 유토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김건희는 "유토가 캠프 때부터 '마운드에서 헤매는 것 같으면 강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토는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기보다 배터리가 함께 이겨내는 과정을 좋아하는 선수"라며 "그래서 마운드에 올라가면 '못 던져도 내 탓, 잘 던지면 네 덕분'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오늘도 자신 있게 던지라는 말이 잘 통한 것 같다"고 끈끈한 호흡을 자랑했다.
단순한 멘털 관리를 넘어, 투구 레퍼토리의 '선택과 집중' 역시 맹활약의 핵심 비결이다. 시즌 초반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무리하게 다양한 구종을 섞어 던지려 했던 유토에게, 코치진과 김건희는 "안 좋은 공을 섞기보다, 가장 위력적인 공에 집중하자"는 확고한 피드백을 건넸다.
키움 김건희-유토. 키움 제공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건희는 "언젠가부터 그날 좋은 공만 집중해서 던지는 걸로 전략을 바꾸니 유토의 공도 살아나기 시작했다"라며 "특히 원래 유토의 슬라이더는 완벽한 무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스위퍼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더라. 직구 터널링이 워낙 좋아 일자로 꽂히다가 확 휘어버리니 타자들이 속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타격 활약보다 투수들의 든든한 호투로 지켜낸 승리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건희. 듬직한 안방마님은 인터뷰 말미, 구단을 향한 진심 가득한 당부의 메시지를 남겼다.
"제가 못 쳐도 투수가 잘 던져서 이기면 다행이죠. 유토요? (내년 계약으로) 진짜 꽉 잡아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