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선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대학 2학년 때 축구화를 벗었고, 한때는 체육 교사의 길을 고민했다. 그때만 해도 지도자는 그의 미래가 아니었지만, 이젠 대학 무대에서 빛나는 사령탑 중 하나가 됐다.
동명대를 이끄는 이승준(34) 감독은 대학 무대 최연소 사령탑이다. 그는 이달 끝난 제62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 백두대간기에서 팀의 준우승을 지휘했다. 근래 들어 번번이 8강의 벽을 넘지 못하던 동명대를 정상 문턱까지 이끌며 이 감독의 지도력이 주목받고 있다.
이승준 동명대 감독. 사진=KFA 최근 만난 이승준 감독은 “저같이 커리어가 짧은 지도자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저 같은 선수 경력을 가진 지도자들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마음속 큰 꿈을 이야기했다.
대학 무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이승준 감독의 축구 인생은 굴곡졌다. 초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그는 김보경, 이승렬 등 훗날 한국축구를 대표한 선배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그는 중학교 졸업 후 브라질에서도 축구를 배웠지만, 소위 성공하지 못했다. 미드필더로 뛴 선수 시절을 떠올린 이 감독은 “게을렀다”고 표현했다.
대학 2학년 때 축구화를 벗은 이승준 감독은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영남대 대학원을 다니며 대구예술대 코치 일을 시작했다. 애초 그는 2021년 이창원 감독이 대구예술대에 부임한 뒤로 지도자 생활을 마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창원 감독과 만난 뒤로 인생이 달라졌다.
이승준 감독은 “저는 사실 축구의 치읓 자도 몰랐다. 이창원 감독님을 만나고 지도자로서 팀을 이끄는 방향, 이기는 방법, 팀 문화를 만들어 가는 방식 등을 정말 잘 배웠다”면서 “그때의 배움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면서 팀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도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포용력도 어느 정도 흡수했다. 이승준 감독은 “감독님이 제 이야기를 한 번도 거절 안 하시고 다 들어주셨다. 감독이 되고 나니 정말 감사했다”면서 “솔직히 저는 코치진을 신뢰하지만, 제 생각과 다르면 전부를 수용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감독은 이창원 감독과 함께한 첫 1년 동안 지도자가 정말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느끼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승준 동명대 감독 대행. 사진=본인 제공 코치로 일하던 이승준 감독에게 이르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 감독은 대구예술대 축구부 해체 후인 2023년 12월 이창원 감독과 동명대로 적을 옮겼다. 그리고 2024년 5월 이창원 감독이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이 감독이 수장으로 동명대를 이끌게 됐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어린’ 감독에게 보내는 세간의 시선이 그에겐 부담이었다. 코치 시절과는 다르게 온전히 결과로 평가받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 걱정이 컸지만, 이승준 감독은 2024년 7월 지휘봉을 잡은 지 두 달 만에 나선 제19회 1,2학년대학축구연맹전 태백산기에서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해 전국체전 동메달까지 안기며 입지를 다졌다.
이승준 감독의 동명대는 이전처럼 능동적인 축구 색채를 유지했다. 공격적으로 나서며 상대를 압도하는 축구를 선보였다. 물론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거듭 준결승 목전에서 막히며 ‘8강 징크스’가 어느 순간 동명대를 괴롭혔다.
좌절은 없었다. 평소 끊임없이 축구를 연구하는 이승준 감독은 전술을 다듬고, 주위 지도자들에게 조언도 구하며 팀을 조금씩 바꿔갔다. 선수 관리에 있어서 본인의 철학도 굽히지 않았다. 제자들보다 10살 정도 많은 그는 “공과 사는 확실히 한다. 선수들과 생활할 때는 편하게 지내려고 한다. 운동장에서만큼은 명확하게 우리팀의 규율과 기준을 갖고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승준 동명대 감독. 사진=대학축구연맹 이달 준우승으로 끝낸 제62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 백두대간기는 그 결실을 본 대회였다. 동명대는 그간 상대 수비수를 괴롭히고 득점을 책임져 줄 장신 스트라이커가 없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세부 전술을 더 날카롭게 가다듬어 파이널 무대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승준 감독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선수 간의 단합력, 원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다가왔던 게 좋았다”면서 “전체적인 전략과 전술은 제가 짜지만, 선수의 의지가 좋았던 대회였다”며 공을 돌렸다. 현 4학년 선수들이 대구예술대에서 넘어온 마지막 멤버이며 이번 대회는 대학축구연맹이 주최하는 그들의 마지막 대회였다. 동명대 선수와 지도자 모두 의기투합한 배경이다.
동명대는 어느덧 대학 무대 ‘신흥 강호’ 타이틀이 어울리는 팀으로 변모했다. 이승준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승준 감독은 “제가 잘 됐을 때 누군가는 저를 바라볼 건데, 그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제가 잘해서 조금 더 높은 단계로 가면 대학·고교까지 엘리트 선수를 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