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첫 선발 등판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벤치에 앉은 스무 살의 젊은 투수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니 노트를 펼쳐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무더운 날씨에 마운드에서 내려온 후에도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펜을 든 오른손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의 노트 앞면에는 '매일 성장하라(Grow Every day)'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달 26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데뷔 첫 선발 등판을 경험한 LG 트윈스 2년 차 투수 박시원의 모습이다. 박시원은 "김광삼 투수 코치님이 젊은 선수에게 노트에 직접 정리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마침 처음 노트에 적는데 이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라고 말하며 "경기 종료 후에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쑥스러워했다. 박시원이 7월 26일 대전 한화전 강판 후 더그아웃에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사진=티빙, MBC스포츠플러스 제공. 박시원은 이날 3⅔이닝 동안 5피안타 2볼넷 4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LG는 이날 장현식의 부상으로 '불펜 데이'를 예고했고, '임시 선발' 박시원은 3회까지 단 1점만 내주며 나름 호투했다. 4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그는 악력이 떨어졌는지 제구력이 조금 흔들렸고 결국 2사 1, 3루에서 교체됐다. 이후 투수 실책과 안타로 박시원의 실점은 4점으로 늘었지만, 자책점은 2점이다.
박시원은 "경기 전날 선발 통보를 받고 설렘이 컸다. 다만 첫 번째 투수라고 여겼을 뿐 선발 등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박시원은 노트에 전력 분석 내용을 적어두고 마운드를 오르기 전에 이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또한 마운드를 내려온 후에는 특히 안타를 맞으면 구종과 구속, 타구 방향 등을 자세하게 적었다. 그는 "코치님께 얻은 피드백도 빠짐없이 적었다"라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시원이 역투하고 있다. 사진=구단 제공 박시원은 염경엽 LG 감독의 마음을 훔친 오른손 신예 투수다. 경남고 출신으로 지난해 LG 6라운드 60순위로 입단했다. 신장 1m93㎝ 93㎏으로 체격 조건도 뛰어나다. 지난해 정규시즌 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3.50(퓨처스리그 5승 3패 평균자책점 5.57)으로 부진했음에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승선했다. 박시원은 "포스트시즌 등판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큰 경험이었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염경엽 감독은 "박시원은 트래킹 데이터 수치가 굉장히 좋다"라며 "직구 분당 회전수(rpm)는 김영우보다 훨씬 좋다. 좋을 때는 분당 2500대, 평소에도 2400대 회전수가 나온다. 슬라이더는 시속 142㎞에 분당 회전수 2700대를 찍는다. 포크볼도 낙차가 크고 좋다"라고 칭찬했다. 박시원이 역투하고 있다. 사진=구단 제공 관건은 제구력이다. 지난해 1군에서 아웃카운트 4개를 잡는 동안 볼넷을 5개나 내줬다. 염경엽 감독은 "박시원은 제구력만 어느 정도 잡히면 내년 전반기 이후 1군 중간 투수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며 "예전보다는 터무니없는 공이 줄어들었다. 김광삼 투수 코치와 거의 마무리 훈련처럼 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기대했다.
박시원은 올 시즌 1군 21경기에서 2패 평균자책점 4.23을 기록 중이다. 추격조로 나서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롱릴리프로로 나서기도 한다. 9이닝당 볼넷이 3.90개(2025년 33.75개)로 감소했다. 총 27⅔이닝 동안 삼진 22개를 뽑을 만큼 공 자체는 위력적이다. 마운드를 내려온 뒤 '성장 일기'를 쓸 만큼 야구에 대한 의욕적이다. 박시원이 7월 26일 대전 한화전 강판 후 더그아웃에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사진=티빙, MBC스포츠플러스 제공.
박시원은 최근 발표된 국군체육부대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탈락했다. 내년에도 계속 1군 무대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염경엽 감독은 "박시원은 내년에 우리팀 5선발 후보 중 한 명"이라고 예고했다. 박시원은 "입단했을 때부터 선발 투수가 목표였고, 그렇게 준비했다. 최종 목표는 LG의 1선발 투수"라고 당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