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 최초의 감독 겸 선수로 유명한 백인천 전 감독이 14일 오전 뇌경색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한일 타격왕, 혼의 야구, MBC 마지막 감독 백인천이 잠들다. IS 포토 한국야구위원회(KBO) 등 야구계에 따르면, 충남 천안에 거주 중이던 고인은 이날 오전 심정지 상태로 구급차를 타고 거주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끝내 숨을 거뒀다.
뇌경색과 뇌출혈 등으로 여러 차례 쓰러질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투병생활을 유쾌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혼(魂)의 야구'라는 그의 야구 색깔처럼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던 그가 끝내 세상이라는 그라운드를 떠났다. 백인천 전 감독은 전날까지 좋은 컨디션에서 병원 정기 검진도 받았다고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동고 시절인 1959년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타자였다. 1960년 6월에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이 개장한 이래 고등학생으로서 첫 홈런을 때려냈다. 고교 졸업 후 실업야구를 평정한 그는 한국에서 나고자란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2008년 백인천 전 감독. IS 포토 1962년부터 도에이, 타이헤이요, 롯데, 킨테츠에서 뛴 그는 1975년 타격왕(퍼시픽리그)에 오를 만큼 뛰어난 타격을 보여줬다. 훗날 백인천 전 감독은 현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그 시절 얘기를 자주 들려줬다. 한국인이라서 멸시 받았던 설움, 일본어를 배우려고 고생했던 추억, 한국인 선배였던 장훈(하리모토 아사오)과의 우정을 떠올리며 시간 여행을 떠났다.
1982년에 한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그는 MBC 청룡에 감독 겸 선수로 입단했다. 수준 높은 일본에서 수위 타자까지 차지했던 백인천 전 감독은 당시로서는 은퇴하고도 남을 40세 나이에 타율 0.412를 기록하며 프로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선수 은퇴 후 야구계를 떠난 그는 1989년 말 MBC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그해 겨울 LG 트윈스가 MBC를 인수하면서 백인천 전 감독은 'MBC의 첫 감독이자 마지막 감독', 그리고 'LG의 첫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1990년 LG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LG의 첫 우승 감독'이 됐다.
1991시즌을 끝으로 LG를 떠난 그는 1995년 말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취임했다. 삼성 시절 우승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이승엽 등 젊은 타자를 육성하며 리그 최강 타선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뇌출혈 증세가 있었다.
두 시즌 만에 삼성을 떠난 그는 2002년 롯데 자이언츠 지휘봉을 잡는다. 무력했던 롯데에 '혼의 야구'를 심고자 했으나, 이듬해 성적 부진으로 떠났다. 당시 신인이었던 이대호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킨 일화도 유명하다.
롯데 감독 시절 백인천. IS 포토 감독 시절에 현장에서 만난 그는 자기 신념이 대단했다. 팀과 야구에 대해 30분 가까이 열변을 토해낸 뒤 기자에게 "난 지금까지 한 얘기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할 수 있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단지 언변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리더로서 생각이 정립돼 있다는 의미였다.
그의 길고 긴 투병생활 TV 프로그램과 기사로 간간이 전해졌다. 부와 명예, 건강까지 잃은 그는 마지막까지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백인천 전 감독의 혼이자, 자존심 같았다. KBO는 고인의 장례를 KBO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