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일간스포츠와 생전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장훈. IS 포토 일본에서 '안타 기계'로 유명했던 야구 레전드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지난 9일 일본 도쿄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장훈은 80세 넘어서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재일 한국인으로 살았다. 그러다 2024년 일본으로 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뛴 23시즌(1959~1981) 동안 장훈은 위대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그를 설명하는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이 통산 3085안타다. NPB 역대 1위이자, 유일하게 3000안타를 넘은 선수였다. 2위(2901개) 노무라 가쓰야보다 265경기 적게 출전하고도 184개 더 쳤다.
장훈의 통산 타율은 NPB 역대 3위인 0.319이다. 이 부문 1위 레온 리(0.320)의 NPB 커리어는 장훈의 절반 정도인 10년에 불과했다.
장훈은 총 7번 리그 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3000안타를 친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NPB에서 가장 많이 '수위타자'에 오른 타자였다. 도에이 플라이어스 소속이었던 1970년에는 타율 0.383를 기록했다. 정규시즌 안타 1위는 3번, 출루율 1위는 무려 9번이나 해냈다.
키 1m81㎝로 당시에는 거인이었던 장훈은 장타력도 뛰어났다. 통산 홈런은 NPB 역대 공동 7위인 504개였다. 통산 루타(5161개)도 역대 3위에 올라 있다. 통산 장타율은 0.534. 여기에 통산 도루 27위(319개)에 오를 만큼 주루도 뛰어났다. NPB 통산 500홈런과 300도루를 모두 달성한 선수는 장훈이 유일하다.
그가 쌓아올린 모든 기록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겨낸 산물이었다. 네 살 때 모닥불에서 고구마를 굽다가 화상을 입은 탓에 그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굽었다. 약지와 소지는 아예 달라붙었다. 어쩔 수 없이 오른손잡이에서 왼손잡이로 변신한 장훈은 야구로 가난을 극복했다.
그라운드를 떠난 장훈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 앞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보를 맡아 2005년까지 활동했다. 이 기간 재일교포 선수들이 KBO리그에 진출하는 데 힘을 보탰다. 또한 TBS 등 일본 방송에서 날카로운 평론을 이어가며 한일 야구계에 쓴소리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