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제공
거장의 귀환이다. 이창동 감독이 ‘가능한 사랑’으로 베니스 은사자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버닝’(2018) 이후 8년 만의 신작으로 14년 만에 한국영화에 베니스 본상을 안기며, 세계 무대에 자신의 건재함을 다시 각인시켰다.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은 12일 오후 7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 팔라초 델 시네마 살라 그란데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의 첫 은사자상으로,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황금사자상) 이후 14년 만의 베니스 트로피다.
지난 1997년 ‘초록 물고기’를 통해 연출자로 데뷔한 이 감독은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 ‘버닝’(2018)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꾸준히 들여다봤다. 소설가 출신답게 현실주의적 시선과 문학적 알레고리를 결합해 온 그는 이번에도 동시대의 삶을 응시하며 인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마주하면서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과정을 그린다. 이 감독이 십여 년 전 처음 구상했던 이야기로, 2022년 단편 ‘심장소리’로 먼저 세상에 나온 뒤 장편으로 확장했다. 지난해 초 오정미 작가와 각색에 들어가면서 해고 노동자 부부에 또 다른 부부가 더해졌고, 두 관계를 교차시키며 지금의 구조를 완성했다. 이 감독은 네 인물의 충돌과 변화를 세밀하게 담아내며, 계급과 노동, 욕망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이 감독은 “보통의 사랑 이야기는 그 사랑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걸 내포하는데, 우리 영화는 제목 그대로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사랑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며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내가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가능한 사랑’은 공개 직후부터 언론과 평단에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6일 월드 프리미어로 첫 공개된 영화는 약 7분간 기립박수를 끌어냈고,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 메타크리틱 96점을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포착하는 시선,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의 연기 앙상블 등을 향한 찬사가 쏟아졌다.
할리우드 리포트는 “이 감독의 인간을 관찰하는 시선은 단연 정점에 서 있다. 인물의 내밀한 감정과 사회적 현실을 꿰뚫어 보는 그의 예리한 통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고, 더 가디언은 “섬세하게 조율된 연출과 아름다운 연기, 소설적인 결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벌처 역시 “이 감독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강력하고, 매혹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호평했다.
이에 힘입어 영화는 지난 11일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식 심사위원단과는 별도로 전 세계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상으로, 비평가연맹은 ‘가능한 사랑’을 “미묘한 힘의 관계를 완벽한 속도감과 여러 층위로 그려내며 착취와 계급을 비롯해 환멸, 사랑, 욕망, 그리고 이야기의 윤리를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베니스에서의 성과는 토론토, 뉴욕, 밴쿠버 등 주요 국제영화제를 거쳐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오스카)으로 향할 전망이다. 앞서 영화진흥위원회는 ‘가능한 사랑’을 제99회 오스카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오스카는 2027년 3월 열릴 예정이며 ‘가능한 사랑’의 예비 후보 선정 여부는 올해 말 확정된다.
한편 ‘가능한 사랑’은 오는 23일 국내 극장 개봉을 거쳐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