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부산 해운대 이벤트광장에서 열린 영화인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 영화인들이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마십시오”라고 적힌 현수막 앞에서 공동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단체 제공
영화인들이 영화 ‘암살자(들)’ 역사적 해석 논쟁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지영·이명세 감독 등 영화들은 8일 영화인 공동입장문을 발표하고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 공적 권한을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며 “관객이 직접 보고 판단할 기회를 남겨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영화에 대한 비판과 토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면 더욱 치열한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지금 이 논쟁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넘어 정치적 정쟁의 도구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작품을 충분히 보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영화의 제작 의도와 정치적 성격을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감독과 배우, 제작사, 투자기관, 공공기관, 극장과 영화제까지 책임의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라며 “영화 제작진에게 관객을 가르치려 한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영화를 보지 않은 채 작품의 의미와 의도를 먼저 규정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고 보지 말아야 하는지까지 정치가 판단하려 한다면 누가 관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국정감사와 자료요구 등 공적 권한의 사용에도 원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전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암살자(들)’을 둘러싼 감독·제작진 출석 문제와 투자·지원 과정, 작품의 내용과 역사적 해석 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진 것을 언급하며 “국정감사는 구체적인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라고 짚었다.
이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먼저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자료요구와 증인 요구, 조사 대상과 책임의 범위를 계속 확대해 민간의 투자와 상영, 문화기관의 판단 영역까지 압박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공적 권한은 정치적 압박의 도구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외영화제의 독립적인 작품 선정과 상영 결정에 국내 정치적 논쟁을 확대하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싱가포르국제영화제가 지난 7일 공식 입장을 통해 외부의 논란과 요구에도 독립적인 프로그래밍 과정을 거쳐 선정한 ‘암살자(들)’을 예정대로 개막작으로 상영하겠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영화제의 역할은 관객들이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작품을 선정하고 상영할 것인지는 영화제의 독립적인 판단 영역이며, 그 작품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관객이 결정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관계자들을 향한 신상 공개와 주거지·일상 침해, 협박과 신변 위협 등으로 논란이 확산되는 상황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이러한 행위는 영화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적 의견 표현과는 명백히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끝으로 “특정 영화에 찬성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정치가 작품의 의미와 관객의 판단을 대신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정치가 한 걸음 물러나고 관객에게 판단의 자리를 돌려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들은 8일 오전 해운대해수욕장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입장문을 낭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지영·이명세 감독을 비롯해 김홍준 감독,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윤성은 영화평론가, 백재호 감독, 전찬일 영화평론가등 여러 세대와 직군의 영화인들이 참석했다.
다음은 영화인 공동입장문 전문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마십시오 관객의 판단을 정치가 대신하지 마십시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작품에 대한 평가의 범위를 넘어 정치권과 공공기관, 투자기관, 극장과 학교, 해외영화제의 상영 문제로까지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비판과 토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면 더욱 치열한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논쟁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넘어 정치적 정쟁의 도구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합니다.
작품을 충분히 보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영화의 제작 의도와 정치적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그 판단을 토대로 감독과 배우, 제작사, 투자기관, 공공기관, 극장과 영화제까지 계속 새로운 책임의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식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몫입니까.
영화 제작진에게 관객을 가르치려 한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영화를 보지 않은 채 작품의 의미와 의도를 먼저 규정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까지 정치가 판단하려 한다면, 누가 관객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또한 국정감사와 자료요구 등 공적 권한의 사용에도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 영화를 둘러싸고 감독과 제작진의 출석 문제, 투자와 지원 과정, 작품의 내용과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국정감사는 구체적인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입니다.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먼저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자료요구와 증인 요구, 조사 대상과 책임의 범위를 계속 확대해 민간의 투자와 상영, 문화기관의 판단 영역까지 압박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공적 권한은 정치적 압박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어떤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국정감사와 자료요구가 이루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대상과 범위가 확대되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인들은 공개된 자료와 적법한 절차를 통해 그 과정과 근거를 계속 살펴볼 것입니다.
공적 권한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면, 그 문제 제기가 어떤 사실과 근거에 기초했는지 역시 설명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내의 정치적 논쟁을 해외영화제의 독립적인 작품 선정과 상영 결정에까지 확대하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합니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10월 7일 공식입장을 통해 외부의 논란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프로그래밍 과정을 통해 선정한 〈암살자(들)〉을 예정대로 개막작으로 상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영화제의 역할은 관객들이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원칙입니다.
어떤 작품을 선정하고 상영할 것인지는 영화제의 독립적인 판단 영역이며, 그 작품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관객이 결정할 일입니다.
이미 이 논쟁의 과정에서 영화 관계자 개인의 신상이 공개되고, 주거지와 일상이 침해되며, 협박과 신변 위협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영화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적 의견 표현과는 명백히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특정 영화에 찬성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정치가 작품의 의미와 관객의 판단을 대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마십시오. 공적 권한을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관객이 직접 보고 판단할 기회를 남겨주십시오.